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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 나선 스타트업 ‘돈을 갖고 튀어라’

돈을 갖고 튀어라. 우디 알렌의 1969년 영화나 혹은 동명 코미디 국산 영화를 말하는 건 아니다. 물론 ‘돈을 갖고 튀어라’라는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건 이보다는 추격전 코미디라는 긴장감 넘치는 영화 같은 장르를 만들어낸 TV 시리즈 무한도전의 첫 추격전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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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늘 할 얘기가 추격전은 아니다. ICO(Initial Coin Offering), 그러니까 가상통화공개다. ICO는 쉽게 말하자면 특정 사업자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가상통화를 발행하고 이를 판매, 자금을 확보하는 방식을 말한다. 블록체인은 잘 알려진 것처럼 가상통화의 핵심 기술 격인 분산원장 기술을 말한다. 공유 네트워크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거래를 암호화해서 블록에 기록하고 체인처럼 이어가는 기술인 것. 세계경제포럼은 세상을 바꿀 21가지 기술 중 하나로 블록체인을 꼽는 한편 앞으로 10년 안에 전 세계 GDP 가운데 10%가 블록체인 기반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ICO의 경우 벤처캐피털 등 투자자를 필요로 하지 않은 채 P2P 형태로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는 새로운 방편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물론 ICO가 주목을 받는 반면 위험성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는 점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런 위험성을 잘 알려주는 사건이 최근 일어났다. 미국 가상통화 스타트업인 루프엑스(LoopX)가 ICO를 통해 450만 달러, 한화로 48억원대에 달하는 거액을 긁어모은 뒤 2월 13일 갑자기 웹사이트는 물론 페이스북과 텔레그램, 유튜브 등 모든 SNS 계정을 폐쇄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사진 아래. https://twitter.com/loopxcoin 계정에 유일하게 남은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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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엑스는 지난 2016년 9월 설립한 가상통화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루프엑스코인(LPX)라는 코인을 발행하면서 ICO를 진행,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들은 투자자 모두에게 주 단위로 10% 이상 수익을 보장한다면서 투자자를 모았다. 이렇게 모은 금액이 한화 50억원대에 달한 것이다. 그런데 루프엑스가 갑자기 ‘돈을 갖고 튀어라’처럼 때 아닌 스릴러를 시작한 것.

더 어이가 없는 건 루프엑스는 사건 발생 일주일 전에 투자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앞으로 일주일 안에 깜짝 놀랄 서프라이즈가 있다”고 친절한 사전 예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설마 도망칠 것이라는 생각은 적었겠지만 이미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 같은 곳에선 루프엑스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한 지적이 나왔었다고 한다. 루프엑스 투자자들 중 일부는 가상통화 추적의 행방을 추적하거나 일부는 집단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가상통화를 이용한 ICO 관련 사기 사건은 전 세계 각국에서 꽤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각국 정부기관 등이 ICO 관련 시장 모니터링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글로벌마켓(ADGM) 산하 금융서비스규제당국(FSRA)의 경우 지난 2월 11일(현지시간) 가상통화와 ICO 등에 대한 일련의 규제를 준비 중이라고 발표했다. FSRA 측은 구체적인 규제 시기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10월에도 ICO나 가상통화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한 차례 경고한 바 있다. 이번에는 아예 규제를 검토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물론 FSRA는 가상통화가 법정 화폐는 아니더라도 상품이나 서비스 교환 수단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수요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위험성과 규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아랍에미리트 SCA(Securities and Commodities Authority) 역시 지난 4일 투자자에게 가상통화를 통한 자금 조달, ICO가 아직까지 UAE 정부의 규제 대상이 아니지만 이런 이유로 가상통화를 통한 투자 위험은 모두 투자자가 부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나서기도 했다. 홍콩증권선물위원회 역시 2월 9일 공식 사이트를 통해 성명을 발표하면서 가상통화 거래소 이용이나 ICO에 투자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투자자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9월 ICO를 전면 금지하는 한편 아직까지 ICO가 시기상조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기관 외에 페이스북 같은 기업 역시 가상통화를 이용한 금융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광고를 금지하겠다고 지난 1월 30일 발표했다. 페이스북은 가상통화나 ICO에 대한 광고를 금지하는 정책(Prohibited Financial Products and Services)을 발표하면서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금융 상품이나 서비스를 조장하는 광고를 금지하겠다고 언급했다. 여기에서 금융상품이나 서비스에는 ICO, 가상통화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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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통화는 새롭게 태어난 기술이다. 새로운 기술 진화를 막는 게 능사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 요인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고 룰 세팅이 안 된 상태인 만큼 규제 여부를 떠나 투자를 한 개인 입장에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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