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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서 10년간 가상 러시아史를…

위키피디아(Wikipedia) 내 콘텐츠 작성과 편집은 자원 봉사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때론 오해가 들어가기도 한다. 2022년 6월에는 중국어판 위키피디아에 수백만 단어에 달하는 가설 러시아 역사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 글은 여성 단 1명이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중국어 버전 위키피디아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탐색하던 중 중세 러시아에 존재한 은광산(Kashen)에 대한 기술을 찾을 수 있다. 이 콘텐츠에 따르면 이 은광산은 13∼15세기 존재한 트베리대공국(Тверское княжество)이 연 것이며 노예 3만 명과 해방 노예 1만 명이 일하는 당시로는 세계 최대 규모 산업 중 하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은광산은 트레비 대공국에서 중요한 재원이었지만 가까운 모스크바대공국이 은광산을 빼앗으려고 트베리 대공국에 전쟁을 가하는 등 역사적 싸움이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트레리 대공국은 1485년 모스크바 대공국에 소멸했지만 이 은광산은 이후에도 채굴이 계속되어 18세기 중반에는 은 고갈로 폐산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 은광산을 둘러싼 중국어판 위키피디아 설명은 풍부하고 트레비 대공국과 모스크바 대공국간 싸움, 관련 귀족과 기술자, 광산을 둘러싼 역사 등 관련 콘텐츠는 수백 건이 올라와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러시아어 버전 위키피디아 콘텐츠와 각주를 살펴보면 러시아어판 콘텐츠는 중국어판보다 짧거나 원래 러시아어판 콘텐츠가 존재하지 않는 등이 판명됐다. 또 중세 채굴 방법에 대한 각주에 21세기 자동 채굴 기술을 설명한 논문이 참조되는 등 몇 가지 모순이 있다는 게 밝혀졌다. 더 조사를 해보면 원래 이 은광산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해당 은광산에 관한 일련의 기술은 실재하는 역사상 일이나 인물과 섞여 있어 전쟁이나 경제 등 다방면에 걸친 기술도 상당히 자세하다. 또 백과사전에 그대로 수록할 수 있는 딱딱한 문체였기 때문에 진짜와 허위를 구분하는 게 더 어렵다. 예를 들어 실제로 트베리 대공국과 모스크바 대공국은 14∼15세기에 걸쳐 싸움을 벌였지만 가상 역사를 쓴 인물은 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쟁 주요 동기로 은광산을 넣은 것이다.

은광산에 관련한 콘텐츠를 작성, 편집한 인물은 4개 계정을 쓰고 있는 중국 인터넷 사용자로 그 중 하나는 절모(Zhemao)라고 불리고 있다. 위키피디아 조사에 따르면 이 계정 사용자는 2010년경 실재하는 청나라 정치가 니오후루 허션에 관한 가짜 에피소드를 집필했다. 이어 러시아 역사에 눈을 돌리기 시작해 2012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1세 콘텐츠를 편집한 뒤 서서히 상상으로 만들어내는 가설 러시아 역사를 중국판 위키피디아에 넓히기 시작했다.

이 사용자는 중국어판 위키피디아에 올린 콘텐츠가 206건에 달한다. 허구 러시아 역사에 대해 쓴 총 문자수는 수백만어에 이른다. 실재하는 국가간 싸움을 바탕으로 연구나 공상을 곁들여 장대한 역사를 만들어낸 이 사용자에 대해 일부 인터넷 사용자는 중국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이 계정 사용자는 자신의 프로필에 러시아 주재 외교관 딸로 러시아사 학위를 갖고 있으며 러시아인과 결혼해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고 적었지만 발표한 사과문에선 실제로는 고등학교를 나온 전업주부라고 밝혔다. 사과문에 따르면 이 사용자는 처음 편집한 2가지 설명에 대한 모순을 채우기 위해 가짜 설명을 만들었고 이어 장엄한 가상 러시아 역사를 쓰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6월 17일 이 사용자가 만든 중국어판 위키피디아 항목은 대부분 삭제됐거나 수정됐다. 하지만 일부 기술은 영어나 아랍어, 러시아어, 루마니아어 위키피디아에도 번역되고 있으며 일부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 편집자는 이 사건에 대해 중국어판 위키피디아가 전체 신뢰도를 흔들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상당수 인터넷 사용자는 수백만어 가상 역사를 쓴 이 계정 사용자의 재능을 칭찬하며 언젠가 소설을 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원영 기자

컴퓨터 전문 월간지인 편집장을 지내고 가격비교쇼핑몰 다나와를 거치며 인터넷 비즈니스 기획 관련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디지털 IT에 아날로그 감성을 접목해 수작업으로 마우스 패드를 제작 · 판매하는 상상공작소(www.glasspad.co.kr)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IT와 기술의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마음으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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