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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작기계 산업이 쇠퇴한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월 8일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를 지금까지의 20%에 84%를 추가해 모두 104%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각국에 대한 관세 인상은 미국 내 무역 적자를 해소하는 동시에 쇠퇴한 국내 제조업을 활성화하는 게 목적이다. 그런 가운데 미국 싱크탱크인 랜드 연구소가 1994년 발표한 미국 공작기계 산업의 쇠퇴와 회복 전망에 관한 보고서가 주목을 받고 있다.

공작기계는 주로 금속 기계나 부품 전반을 만드는 기계이며 목재나 수지 등의 가공에도 사용된다. 다양한 제조업에서 공작기계가 사용되기 때문에 공작기계 산업은 제조업에서 중요한 요소다. 보통 공작기계 제조업체는 최신 제품을 자국이나 관계가 깊은 국가에서 판매하기 때문에 국내 공작기계 산업 약화는 제조업이나 방위산업 전체의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1980년대 들어 미국은 세계 최대 공작기계 대국이었지만 1980년대를 통해 점차 미국 공작기계 산업은 쇠퇴했고 1990년에 들어갈 무렵에는 미국 공작기계 생산량은 독일이나 일본 절반 이하가 되었다. 지금도 공작기계 점유율 상위 랭킹은 독일이나 일본 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76년~1992년 공작기계 점유율을 국가별로 보면 미국은 1980년대 초반까지 점유율 1위였지만 그 후 독일, 일본에 추월당해 1992년 시점에서는 이탈리아와 경쟁하는 상황이다.

이에 1994년 당시 랜드 연구소 연구원인 데이비드 앤더슨은 미국 공작기계 산업이 쇠퇴한 요인, 왜 업계가 회복하지 못했는지, 회복 전망이 있는지, 재건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분석했다.

먼저 미국 공작기계 산업이 쇠퇴한 요인. 분석에서는 1980년대 미국 공작기계 산업이 쇠퇴한 요인에 대해 4가지가 확인됐다. 첫째 미국 공작기계 제조업체는 국내 소비에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에 1981년~1983년에 걸친 수요 감소에 큰 영향을 받았다. 둘째 역사적으로 미국 공작기계 제조업체는 불안정한 수요에 대해 주문 잔량을 축적해 대응했다. 이로 인해 수요 회복 시 다른 국가 제조업체가 빠르게 새로운 주문에 대응한 반면 주문 잔량이 있었던 미국 제조업체는 대응할 수 없었다.

셋째 독일이나 일본 기업은 공작기계 신뢰성이나 가격, 모듈 생산 기술 등에서 미국 기업을 앞질렀으며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켜 CNC 시장에서 선행자 이익을 얻었다. 넷째 이 기간 동안 달러 강세가 발생해 미국 기업이 해외 경쟁 기업과 경쟁하는 능력이 손상됐다.

이런 문제는 미국 공작기계 산업이 쇠퇴한 요인을 설명하는 것이지만 1983년~1992년에 걸쳐 산업을 부활시키고 새로운 시장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이유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앤더슨은 쇠퇴 후 회복하지 못한 게 업계 내 더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작기계에서의 경쟁 우위는 빠른 기술 변화나 글로벌 경쟁이라는 2가지 트렌드에 대응하고, 필요에 따라 새로운 능력을 획득해야 한다. 미국 공작기계 제조업체가 새로운 능력을 획득하지 못한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려면 자본재, 노동자 훈련, 수출을 위한 마케팅, 기타 분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지만 미국에는 이러한 능력을 사내에서 개발할 수 있는 대기업이 적다. 또 중소기업 간 협력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도 부족하다.

둘째 미국 공작기계 제조업체는 높은 거래 비용이나 은행과의 장기적 관계 부족, 과잉 생산 능력, 수익성 저하 등 문제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새로운 기계를 구입하거나 마케팅에 자금을 쓰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 외국 기업은 선진적인 산업 장비에 투자하는 인센티브를 정부로부터 제공받고 있다.

셋째 미국 노동자 기술은 기본 자격 부실이나 숙련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견습 제도 붕괴, 대학원 엔지니어 부족 등 요인으로 인해 외국 노동자에 비해 낮은 수준에 있다. 또 노동 시장 구조와 정부 주도 훈련 프로그램 실적이 부족한 것이 더해져 독일이나 일본에서 행해져 온 노동자 훈련에 대한 투자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넷째 미국은 공작기계 관련 기초 기술 연구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지만 대학과 공작기계 제조업체 연결이 약하기 때문에 기술을 시장 우위로 연결하는 시도가 잘 되지 않고 있다.

5번째 공작기계를 찾는 미국 제조업체가 최신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 늦었다. 유일한 예외는 방위산업 분야이며 이 분야에서는 여전히 미국의 공작기계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6번째 1980년대 후반에는 공작기계에 대한 세계적인 수요가 급증했지만 미국 공작기계 제조업체는 수출 지향이 약했기 때문에 이 기회를 활용할 수 없었다. 미국 공작기계 제조업체 수출 능력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수출 허가 제도나 방위 관련 기술을 관리하는 정부 규칙, 정부 수출 지원책 부족 등으로 인해 방해받아 왔다.

그렇다면 회복 전망은 있을까. 앤더슨은 다양한 장벽으로 인해 미국 공작기계 제조업체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국내 기업 재편이나 내수 급증, 경쟁 상대인 독일이나 일본의 경제 위기 등 요인으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 CNC 기술 우위도 흔들리고 있으며 기초 연구에서 선도하고 있는 미국이 향후 공작기계 시장에서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보여줬다.

미국 공작기계 제조업체를 부활시키는 데 있어 그는 정부 역할을 지적했다. 첫째 공작기계 제조업체, 사용자, 공급업체 간 지역 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지원하고 새로운 기술 도입을 촉진한다. 여러 기업에 의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개별 기업만으로는 불가능한 서비스 패키지를 제공할 수 있다.

둘째 제조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연방 정부의 연구 개발을 생산 프로세스 개선을 향해 연구 기관과 기업 간의 긴밀한 관계를 구축한다.

셋째 미국 공작기계 제조업체가 국제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수출 허가 절차를 더 합리화하고, 국제적인 판매 활동을 지원하며 과거 보호주의적 정책에 빠지는 걸 회피한다. 미국 공작기계 제조업체가 장기적으로 번영하려면 글로벌한 존재감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1994년 보고서는 공작기계 제조업체 번영에는 국내 산업을 성장시키는 동시에 관세 인상과 같은 보호주의에 빠지는 게 아니라 국제적인 존재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현재 미국 제조업은 외국 제품에 밀려 약화되어 있으며 제조업 노동자나 경영자층 지지를 받아 트럼프 정권이 탄생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권 정책은 1994년 보고서에서 제안된 것과는 정반대로 제조업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관세를 인상하고 있다.

이미 주가 하락이나 물가 상승 같은 문제가 부상하고 있지만 미국 통상대표부 제미슨 그리어 대표는 제조업을 국내로 되돌리려면 고통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원영 기자

컴퓨터 전문 월간지인 편집장을 지내고 가격비교쇼핑몰 다나와를 거치며 인터넷 비즈니스 기획 관련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디지털 IT에 아날로그 감성을 접목해 수작업으로 마우스 패드를 제작 · 판매하는 상상공작소(www.glasspad.co.kr)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IT와 기술의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마음으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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