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핀란드에서는 국민에게 고액권 지폐를 반으로 자르도록 명령하는 지폐절단(Setelinleikkaus)이라는 독특한 통화 절하 정책이 시행된 바 있다.
핀란드 정부는 1945년 12월 31일 5,000마르카, 1,000마르카, 500마르카 고액권 지폐를 가위로 절단하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잘린 지폐 왼쪽 절반은 여전히 물건을 구매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 가치는 원래 금액 절반에 해당했다. 반면 오른쪽 절반은 정부에 강제로 빌려준 것으로 간주됐으며 채권 형태로 전환되어 구매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이 정책은 1922년 그리스, 1945년 노르웨이와 덴마크에서도 유사하게 시행된 전례를 참고한 것으로 당시 유럽 전역에서 전쟁 후 과도한 통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으로 간주됐다. 경제학자 루디거 돈부시와 홀거 C. 울프는 1990년 논문에서, 이 조치는 전쟁 기간 동안 강제 저축으로 축적된 과잉 소비력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쟁으로 공장 등 생산 기반이 크게 파괴된 상황에서 물자 부족이 예상됐고 이는 물가 상승, 즉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 핀란드 정부는 소비력을 절반으로 줄이고, 남은 절반을 1949년에 만기 상환하는 2% 이율 채권으로 전환했다. 또 독일이 핀란드 자금을 대량으로 유출하거나 위조 지폐를 만들고 있다는 의심 속에 새로운 지폐 발행을 서두르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지폐 절단 조치는 현금에만 적용됐으며 이는 당시 유통되던 전체 통화량 8%에 불과했다. 예금과 같은 형태 통화 과잉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더불어 많은 국민이 이를 사전에 예측하고 현금을 예금이나 부동산으로 전환해 자산을 방어한 것도 실패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이로 인해 특히 가난한 이들과 지방 거주자가 경제 혼란의 큰 피해를 입게 됐고 이 경험은 핀란드 국민에게 강한 불신으로 남았다. 1967년 마르카 절하 논의가 있을 때조차 다시 지폐를 절단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이 정책 여파는 오래도록 지속됐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