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레시피

미국이 TSMC를 대만에서 빼앗고 있다?

TSMC는 최근 미국과 일본 등 대만 이외 지역에 팹을 건설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 미국간 대립으로 인해 미국 진출을 진행하는 TSMC는 대만 내에선 미국에 빼앗기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지난 2020년 1월 미국 정부는 미국 내에서 칩을 제조하라고 TSMC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0년 5월 TSMC는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TSMC가 애리조나주에 건설하는 공장은 5nm 제조 공정인 N5 설비를 갖춘다고 알려졌다. 당시 보도는 대만에선 그렇게 무거운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다. 대만에 위치한 거대한 팹 4곳에선 1개월당 10만 장 넘는 웨이퍼를 제조할 수 있지만 애리조나 팹은 소규모로 1개월에 300밀리 웨이퍼 2만 장 밖에 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 또 팹이 완성되어 가동되는 2024년에는 N5 자체가 첨단 공정이 아닐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하지만 TSMC는 올해 12월 애리조나주에 건설을 진행하는 팹에서 N5 강화 버전인 N4, 3nm 제조공정인 N3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또 애리조나주에 2번째 공장 건설 계획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TSMC는 일본 정부로부터도 보조금 4조원 대를 받고 구마모토현에 팹을 건설하겠다고 표명했고 독일에도 팹을 건설하는 방향으로 최종 조정에 들어갔다고 2022년 12월 발표했다. 모리스 찬 TSMC CEO는 사업 성공 비결은 대만에서 모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말해왔다. 애리조나 등 해외에서 팹을 만드는 움직임은 TSMC가 오랫동안 지켜온 규범에서 벗어나며 대만인을 긴장하게 하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해외 진출 움직임 중심에 있는 건 수요와 자금 조달이라고 할 수 있다. TSMC는 고객과 밀접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기업이며 고객 총 수익 4분의 1을 차지하는 건 애플이다. 애플은 단순 고객이 아니라 TSMC가 첨단 칩을 생산하기 위해 자금을 제공하는 스폰서이기도 하다.

보도에 따르면 애플이 TSMC에 애리조나 공장에서 애플 반도체를 생산하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애플이 TSMC 수익 4분의 1을 잡고 있는 만큼 TSMC는 애플 측 요구를 들을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 상원은 2022년 8월 미국 내 팹 건설에 5년간 500억 달러 이상 자금 제공을 실시하는 CHIPS법을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TSMC가 미국에 새로운 팹을 건설하는 흐름이 가속됐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반도체 제조는 기술이나 경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이 TSMC에서 기술을 훔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 의견이 많다. 기술 이전을 할 경우 반도체 생산을 국내에서 할 필요성, 기술이나 지식 습득, 팹 설비 확보 등 현지 기업만으론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아 공동 출자로 인한 합작 사업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하지만 TSMC는 싱가포르에 위치한 팹을 빼곤 중국에 있는 시설을 포함해 거의 모든 팹을 자체적으로 완전 소유하고 있다.

TSMC는 애리조나주에 건설 중인 팹 투자로 3년간 280억 달러를 지출할 예정으므로 1년에 90억 달러 지출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TSMC는 2022년 360억 달러 설비 투자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만큼 1년분 설비 투자 중 25∼30%를 애리조나주 팹에 투여하게 된다.

또 TSMC는 2021년 300밀리 상당 웨이퍼를 1,420만 장 출하했다. 2022년 1,500만 장에서 1,600만 장 그러니까 1개월에 130만 장을 생산하고 있다. 이 중 75∼85%가 대만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애리조나주 팹이 완성되어도 웨이퍼 생산량은 1개월에 2만 장. 만일 생산이 1개월당 5만 장까지 확대되어도 생산량은 전체 중 0.3% 정도로 투자에 어울릴 만한 생산량을 확보할 수 없다.

한편 대만 내에는 N2나 N1 등 개발 중인 첨단 공정을 도입한 팹 건설이 발표되고 있다. 또 N28 팹도 새롭게 대만 내에 건설할 계획도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대만에서 TSMC를 훔치고 있다는 의견은 어리석다는 지적이다. 또 팹 매니지먼트와 연구 개발, 운용, 공급망 관리 등은 모두 대만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 모든 걸 빼앗길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고 할 수 있다. 생산한 웨이퍼를 반도체에 조립하고 패키징하는 공정에 대해선 ASE나 SPIL 등 대만 기업이 점유율을 쥐고 있어 비록 반도체 제조 기술을 미국이 빼앗아도 칩 제조 전체를 미국이 장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뉴스레터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