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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를 벗어나려는 도전자들

중국과 일본, 인도, 영국, 유럽연합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가 자체 위치 확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연구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 위성도 발사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를 통해 위치를 측정하는 기능을 실질적으로 독점해온 미국 입장에선 엄청나게 큰 변화가 생긴다는 의미다.

GPS는 냉전 시대 미 공군이 군사 목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2000년대 중반 소비자에게 개방한 바 있다. GPS를 지배하는 것엔 수많은 이점이 있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건 군사, 상업용에 관계없이 전 세계 사용자가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펜타곤의 자비에 의해 위치를 결정 받게 되는 셈이다. 이 기술 개발과 측위 위성 발사가 우주 산업에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파급 효과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GPS의 대안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러시아의 GLONASS(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 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진행한 이 공격적인 프로그램은 몇 년 전 전 지구를 커버할 수 있게 됐다. 소련 붕괴 이후 쇠퇴하던 걸 재구성한 것. 이젠 수많은 국가가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 한다. 이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건 GPS를 대체해 글로벌 시스템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는 중국이다.

베이더우(Beidou)는 2000년 이후 천천히 구축해왔고 주로 아시아 서비스 제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최근 베이더우 위성 발사를 가속화, 글로벌 서비스 제공을 노리고 있다. 얼마 전 기사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만 11개에 이르는 베이더우 위성을 쏘아올렸다. 전체 네트워크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2020년까지 수십 개에 달하는 위성을 추가할 계획이다. 네트워크를 모두 구축하면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스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지난 2017년 11월 5일 중국은 서창위성발사센터에서 창정3호(Long March-3B)를 발사했다. 여기에는 24, 25호 베이더우 위성을 탑재했다. 중국은 위성을 궤도 뿐 아니라 자국 스마트폰 제조사에도 베이더우를 지원하는 칩을 탑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화웨이와 샤오미 등 대표적인 스마트폰 제조사는 GPS와 GLONASS 외에 베이더우 시스템을 지원한다.

이는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과 애플 같은 미국 스마트폰 리더를 곤경에 빠뜨린다. 아이폰처럼 글로벌 1개 통합형 모델을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는 애플 입장에선 GPS 독점 붕괴는 골치 아픈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중국 시장에만 베이더우를 지원하는 독자 모델을 공급해야 할까. 혹은 글로벌 모델에 베이더우 칩을 탑재해야 할까. 이에 따라 미국 국가 안보 당국과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

번거로운 문제는 이것 뿐 아니다. GPS를 대체할 시스템에 가장 적극적인 건 중국이지만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게 중국 하나는 아니기 때문. 일본은 우주 개발을 중국에 대항하는 동시에 경제 회복을 위한 국가적 우선순위로 여기고 있다. 이 프로그램 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위치 측정 시스템 구축을 들 수 있다. 준천정위성시스템(Quasi-Zenith Satellite System)은 지금까지 10만 8,000만 달러에 이르는 비용을 들였다. GPS를 강화해 일본 전역을 커버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일본은 이를 통해 2,155억 8,000만 달러에 이르는 경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새로운 시스템을 이용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생산 규모가 작기 때문. 수신기 가격이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율주행 차량이 높은 위치 정밀도를 필요로 할 수 있지만 해당 기술을 자동차에 도입하려면 차량에 들어갈 비용을 낮출 필요가 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인도 역시 GPS를 보완할 IRNSS(Indian Region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 시스템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위성 7개를 발사해 인도 대륙을 커버할 만큼 확장한 상태다. 그 뿐 아니라 브렉시트를 둘러싼 국민 투표 결과 3월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게 된 영국 역시 EU의 갈릴레오(Galileo) 측위 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자체 시스템 개발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갈릴레오는 2019년에는 전체 운용 가능 상태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렇듯 전 세계는 이제껏 쓰던 단일 시스템, GPS에서 7개에 이르는 시스템으로 전환되려 한다. 중국은 GPS와 GLONASS 외에 베이더우를 원칩에 구현하는 걸 촉진시키려 하지만 중국이라는 국가 규모만으로 성립될 일은 아니다. 영국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우 인구가 중국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만큼 가격을 낮추기 위해 필요한 양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론상으론 칩 하나로 다양한 체제와 호환될 수 있게 설계할 수 있다. 하지만 GLONASS나 베이더우 같은 건 미국 국가 안보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 다시 말해 인터넷이 이질적인 극으로 분단되듯 스마트폰 위치 측정 칩도 이런 지역별 시장에 대응하려면 분할 대응을 강요받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는 소비자에겐 높은 가격을 의미하며 제조사에겐 더 엄격한 공급망 구축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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