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문장이나 SNS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을 때 화면에는 다음 문자나 기호가 입력되는 위치를 나타내는 점멸하는 커서가 표시된다. 너무 익숙해져 깊게 생각한 적이 없는 사람도 많을지 모르지만 만일 입력 화면 어디에도 점멸하는 커서가 없으면 도대체 어디에 다음 문자가 나타나는지 알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이런 점멸하는 커서가 탄생한 건 의외로 1960년대다.
초기 컴퓨터 단말을 사용하는 많은 사람이 괴로워한 건 다음 문자가 입력되는 장소를 나타내는 장소 표시가 없다는 문제다. 사용할 수 있는 화면이 너무 작을 수도 있고 1960년대 컴퓨터 단말에선 텍스트 도중에 다른 단어를 끼우거나 단어를 삭제하는 게 어려웠다.
이런 과제에 임한 건 찰스 키슬링이라는 미국 퇴역 구닌. 1930년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종군 이후 1955년 스페리랜드라는 기업에 입사했다. 스페리랜드는 나중에 타사와 합병해 국제 IT 서비스 기업인 유니시스가 됐지만 당시 유니벡(UNIVAC)이라는 초기 상용 컴퓨터를 개발하고 있었다.
키슬리은 스페리랜드 엔지니어로 디스플레이 시스템 로직 회로 개발에 종사하는 것 외에 점멸하는 커서도 개발했다. 점멸하는 커서 특허는 키슬링이 1967년 출원한 것이며 2014년 1월 83세로 타계했을 당시에도 이 업적이 적혀 있다. 키슬링은 생전에 커서가 어디 있는지 알리는 게 없었기 때문에 깜박이는 커서를 개발했다고 아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깜박이는 커서는 곧바로 세상에 퍼진 건 아니다. 이 기능은 1977년 애플II에 처음 등장했고 나중에 1983년 출시된 애플 리사에도 통합됐다. 애플II가 출시된 다음 해 애플에 입사해 매킨토시 개발 주요 멤버가 된 앤디 하츠펠드는 거의 자력으로 애플II를 개발한 스티브 워즈니악이 소문자 입력 기능으로 교환해 점멸 커서를 내장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츠펠드는 오리지널 애플II는 소문자를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지만 트레이드오프를 했다고 밝혔다.
워즈니악은 애플II에서 소문자 입력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당시에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어쨌든 하드웨어 제한으로 소문자 입력을 포기한건 확실하다. 덧붙여 애플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사용자는 커서가 아닌 마우스를 이용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리지널 매킨토시에는 커서 키가 없다.
하지만 하츠펠드는 자신이 애플II에서 처음으로 깜박이는 커서를 본 게 아니라 몇 년 전 비디오 단말에서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1973년 출시된 비디오 단말 VT05에 커서 점멸 기능이 탑재되어 있는 등 애플II 이전에도 복수 단말에서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점멸하는 커서는 단번에 보급되어 당연한 게 됐고 지금은 구글 문서나 메모장 등 문서 작성 소프트웨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화면, 검색엔진 입력창 등 곳곳에서 커서가 점멸한다. 인디애나대학 연구자는 깜박이는 커서는 매끄럽고 직관적이며 사용자 혼란 없이 작동하는 뛰어난 설계라고 평가하고 있다.
깜박이는 커서는 탄생부터 반세기 이상이 지나도 건재하지만 하츠펠드는 AR 등 새로운 기술 등장과 함께 커서를 대체하는 위치 표시 방법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