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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 시스템이 말하는 ‘가상통화 시장의 현재’

가상통화(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높다. 비트코인(Bitcoin)은 말할 것도 없지만 채굴 경쟁은 과열 양상. 중국 기업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비트코인 채굴기 생산 업체로 알려진 비트메인(Bitmain)이 반도체 제조사인 엔비디아(nVIDIA)를 웃도는 실리콘 웨이퍼를 주문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에이알케이인베스트먼트(ARK Invest)에 따르면 비트메인은 지난 2017년 4분기 TSMC로부터 매달 16nm 제조공정으로 만든 실리콘웨이퍼 2만 장을 구입했다고 한다. 이는 이전 분기에 비트메인의 주문량보다 2배나 늘어난 것이며 앞서 밝혔듯 엔비디아의 발주량을 넘어서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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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메인은 이렇게 주문한 반도체를 이용해 비트코인 채굴을 위한 ASIC(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 주문형 반도체) 칩 제조에 이용한다. 실리콘 웨이퍼 1장이면 ASIC 칩을 5,670개까지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비트메인 채굴기에 이용하는 칩(Antminer S9)이라면 월 60만 개가 될 것이라고 한다.

TSMC 발주 물량에서도 가상통화 채굴에 쓰이는 칩은 인공지능 개발은 물론 모바일 기기용 물량을 웃돈다고 한다. 비트메인은 ASIC 칩 개발 뿐 아니라 AI 기술을 도입해 채굴 속도를 높이는 등 반도체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상통화 환율이 지난해 연말부터 급상승하면서 채굴 시장의 또 다른 격전지로 떠오른 게 바로 그래픽카드라고 할 수 있다. 그래픽카드 가격이 급등하는 것. 원래 게임을 위해 만든 도구지만 정작 게이머가 손에 쥐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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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통화는 채굴하는 마이너가 많을수록 채굴 난이도가 더 높아지는 구조다. 하지만 시세가 급등하는 속도가 빨라 수익성도 높아진다는 점 때문에 채굴에 손대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이런 점 때문에 고성능을 바탕으로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고성능 그래픽카드를 구입하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엔비디아의 지포스 GTX1080이나 AMD의 라데온 RX580 같은 제품이 이런 대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예를 들어 지포스 GTX1060이라면 매일 카드 장당 5달러 채굴이 가능하다면 GTX1080을 이용하면 8달러 채굴을 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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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견적 사이트인 PC파트픽커(PC Part Picker)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라데온 RX580의 가격은 250달러였지만 7월 350달러, 연말에는 400달러를 넘었고 일부에선 600달러에 판매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상황인 만큼 엔비디아나 AMD가 즐거운 비명을 지를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나쁠 거야 없겠지만 고민이 커질 수 있다. 제조사 입장에선 환율이 급락을 오가는 시장 수요를 위해 생산라인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 채굴 수요가 단번에 사라지거나 이런 상황이 오면 중고 시장에 채굴용 그래픽카드가 대량으로 풀리고 A/S 비용 증가 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게이머 등 탄탄한 기존 고객을 위한 방편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유럽에서 1인당 2장까지 판매 수량을 제한하는 등 마이너의 대량 구매를 규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 중국 정부가 비트코인 채굴을 규제하고 있어 대규모 채굴장(?)이 운영 중인 마이너 입장에선 중국을 벗어나 인도나 캐나다 등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트코인 자체가 상당한 폭주 상태를 보이고 있어 사회적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가상통화 자체가 사회적 실험 단계를 거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다. 다양한 실험과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가상통화 자체가 앞으로 계속 진화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할 것으로 보인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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