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2050년에는 97억 명, 2100년에는 109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급격한 인구 폭발은 지금부터 1만 2,000년 전 생긴 신석기 혁명에서 이어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고고학자는 1만 2,000년 후 매장된 도구 등에서 당신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파악하려 한다. 만일 인류가 여러 행성에 식민지를 갖고 있는 시대에 도달한다면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기술과 생활 수준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지 모른다.
이런 시대에는 사람이란 어떤 생물이냐는 자기 인식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자기 인식이 변화한 시대에는 고고학자가 숲에 묻혀 있는 잡동사니에서 과거 인류의 자기 인식을 배울 수밖에 없다. 이는 미래 고고학자가 안게 될지 모를 문제다. 하지만 현대 고고학자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대 고고학자는 1만 2,000년 전 생긴 혁명을 재구축해 풀려고 한다. 수수께끼를 해명할 단서는 훨씬 과거 인류가 남긴 유물 뿐이다. 현대에는 색과 소리가 있는 4K 화질 영상으로 사람의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전에는 영상이 존재하지 않고 지난날 모습을 비춰주는 건 사진이나 그림 정도다. 500년 전에는 인쇄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자 정보는 자필로 복제되고 정보 신뢰도는 낮았다.
세계 첫 역사가로 알려진 투키디데스가 탄생한 건 기원전 400년경. 투키디데스 이전에는 역사 서사시나 전설 등 전통과 벽화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벽화가 남아있는 시대보다 더 고대 인류에 대해 가르쳐주는 건 흙 속에 남겨진 유물 조각 뿐이다. 이런 유물은 시대 흐름에 의해 원래 용도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고대 인류에 대해 알려진 게 몇 가지 있다. 알려진 것 중 하나는 인류는 대략 200만 년 동안 거의 생활에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2만 년 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2만 년 전 전 세계 인류는 100만 명 정도 밖에 없었다. 2만 년 이전에 현생인류 종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사람 속인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사멸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도구 사용법을 이해하는 지능 외에도 서로 이해하는 사회적 지능, 추상적 개념을 설명하는 언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창의성을 갖고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대부분 현재 인류와 차이가 없다. 그들은 고통과 기쁨을 경험하거나 지루하거나 울거나 웃기도 했다.
이런 생활 스타일은 수십 명 단위 공동생활을 했다. 불이나 나무, 돌, 뼈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거나 얘기를 하거나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예술적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 다른 부족과 흑요석, 조개를 이용해 교역하고 돌아다니고 큰 먹이를 사냥하거나 식물을 채집하거나 고기잡이를 하는 부족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삶은 2만 년 이전에는 거의 불변이었다. 하지만 느린 변화가 2만 년 전 생겨 점차 빨라졌고 1만 2,000년 전 혁명이라고 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 변화가 급속도로 빨라진 걸 나타내는 한 증거는 갈릴리 호수와 사해를 잇는 지역에 있다. 2만 년 이상 예전 이 지역에 살던 인류는 밀 씨앗을 땅에 뿌리면 다음 연도에 수확량이 늘어난다는 걸 깨달았다.
이 발견은 사냥과 채집에 훌륭한 대안이 될 초기 농경을 만들어낸다. 이 발견에 의해 발생한 밀 잉여를 사용해 빵과 맥주도 탄생했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이런 동식물에 대한 지식이 이어지고 있고 인류는 동식물을 자신에게 적당하게 조작할 수 있다. 인류는 아주 천천히 이런 지식을 상속해갔다.
지식 상속의 영향은 크게 초기 농경조차 생존에 필요한 토지 면적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이 생존에 필요한 면적을 줄여 인류는 한 지역에 정착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작은 진보가 겹쳐 쌓여서 큰 혁명이 생긴 게 지금부터 1만 2,000년 전 인류의 기원이라는 시기다. 이 시점을 전환점으로 인류는 밀과 호밀, 옥수수, 감자 등 현대 인류가 필요로 하는 칼로리 대부분을 지탱하고 있는 15종류 곡물과 야채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런 신석기 혁명이라고 불리는 사건은 단 하루 중 생긴 게 아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지식이 천천히 축적된 결과 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큰 변화에 이른 것이다. 신석기 혁명 이후 수천 년에 걸쳐 인류는 삶의 축을 사냥, 채집에서 농경으로 전환해 취략 규모도 확대됐다.
농경으로 전환은 이미 농경을 하고 있는 집단이 이주할 때마다 전파됐다. 한편 농업으로 전환은 문제도 낳았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대에 인류가 먹던 동식물은 250종 정도, 음식에 다양성이 있었다.
하지만 농경으로 전환해 음식 다양성은 격감해 특정 영양소가 부족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가축과의 공동생활은 전염병의ㅣ 온상이 되기도 했다. 콜레라와 천연두, 홍역, 유행성 감기, 수두, 말라리아 등 감염은 모두 신석기 혁명 이후 발생한 질병이다. 이런 결과로 사망률, 특히 유아 사망률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하지만 농경에 의해 정착이 가능하게 됐기 때문에 한 번 키우지는 아이의 수 자체가 증가했다. 사망률은 증가했지만 인구는 계속 증가했다. 전 세계 인구는 인류 기원 이전에는 거의 일정해지만 인류 기원 이후 2000년 정도에 4배가 됐다.
이 인구 폭발로 식량 수요가 증가했고 그 결과 인류는 면적당 칼로리 생산량이 낮은 수렵과 채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남겨진 건 왜 인류는 수렵과 채집에서 농경으로 전환했느냐는 의문이다. 자연 속에서 생활은 음식에는 많은 옵션이 있었지만 농업 이후 음식 선택은 손실됐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기후 변화가 원인이라는 연구도 있고 영양 부족과 인구 과다 등 외부 요인이 원인이라는 연구도 있다. 하지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생각은 인류 대다수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혹시 함께 생활하며 우정을 키우고 서로 대화하고 지식을 교환하기 위해 농경으로 전환했을지도 모른다. 수렵 채집 민족은 축제나 의식을 위해 먼 길을 멀리 여행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민속학자도 있다. 축제와 행사에서 열린 지식 공유가 농경 전환을 촉구했을 가능성은 낮지 않다.
인류는 농경으로 전환한 결과 함께 살면서 서로 축하, 서로 물건과 지식을 나누게 됐다. 방법 자체에는 변화가 발생했지만 현대 인류도 함께 살며 서로 축하하고 물건이나 지식을 나누는 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