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레시피

배설물은 에너지다

변 같은 배설물이라면 거부감이 클 수 있지만 사실 감춰진 놀라운 잠재력이 있다. 변을 방치해두면 세균으로 분해되면서 메탄이 풍부한 바이오가스가 생성되며 이 가스는 에너지로 재사용할 수 있다. 또 덩어리를 건조하면 분말 연료와 석탄에 가까운 에너지를 갖는 가연설 블록을 만들 수도 있다. 연료로서의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환상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미 선진국에선 이 같은 에너지를 이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국 물처리센터 중 한 곳은 변으로 에너지 소비 중 절반을 해결하고 있다. 요즘은 개발도상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를 제공할 뿐 아니라 위생 문제까지 해결하려는 목표 하에 진행하는 것. 하수 범람과 잘못된 관리는 물을 오염시켜 사람의 건강과 지역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선진국 도시의 경우 배설물은 복잡한 아래 수로를 통해 물처리시설로 간다. 필터 등을 통과하면서 고형물을 제거하고 하수만 남긴다. 이후 하수구에서 바닥에 침전시키는 침전지로 간다. 여기까지 가면 미생물이 분해하는 동안에도 물은 필터와 화학물질, 새로운 박테리아를 이용해 정화된다. 이 과정을 겪는 동안 미생물 발효에 의해 바이오가스가 만들어진다.

이런 시스템은 물론 개발도상국에는 아직 보급되어 있지 않다. 세계보건기구 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23억 명이 이 같은 가장 기본적인 위생 시설을 갖추고 못했고 8억 9,200만 명이 아직도 야외에서 배변을 한다. 개인 화장실 또는 제대로 된 하수나 물처리 시설에 연결된 화장실에서 배설을 하는 인구는 전 세계 인구 중 39%인 29억 명에 불과하다.

2015년 유엔보고서는 이 같은 보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 추산에 따르면 야외에서 배설하는 사람의 배설물을 이용해 메탄가스만 최소한 2억 달러 상당을 생성할 수 있으며 1,000만 명 거주 주택에 전기를 조달할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간다의 경우 배설물 에너지를 이용한 다양한 시스템을 이미 도입했다. 수집되지 않은 쓰레기를 가마에 넣어 에너지로 바꾸거나 도살장에서 오물과 폐기물을 이용해 바이오가스 재활용 등을 한다.

우간다 수도인 캄팔라 시장을 2011∼2018년까지 지낸 제니퍼 무시시(Jennifer Musisi)는 2014년 이전까지만 해도 학교 화장실에선 요리와 전기를 위해 장작을 이용했지만 비용이 높고 지속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학교에서 바이오가스를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게 됐고 그 결과 발전 시설 확대를 목표로 하수 발전 시스템 10곳 설치에 합의했다고 한다. 또 우간다 상하수도국은 최근 국제 비영리단체인 워터포피플(Water for People)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캄팔라 하수처리장의 침전물을 가연성 블록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유럽 물처리 시설은 대중교통을 움직이는 에너지 활용을 위한 바이오가스를 생산한다. 우간다에선 최근 개설된 새로운 시설을 통해 같은 일을 하려 한다. 다만 이들 시설은 지역 내 전력망에 전력을 보내는 걸 목적으로 한다는 게 조금 다르다.

이웃 케냐에서도 같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며 배설물 처리 시설에 배설물을 옮겨 건조시키고 요리나 난방에 쓰는 연료원을 확보하려는 한다. 나이로비 빈민가에선 화장실 딸린 시설을 갖춘 바이오가스 생성기를 이용해 메탄가스를 추출해 시민에게 판매하기도 한다.

지난 10년간 배설물을 재활용한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하지만 인간의 배설물을 에너지로 바꾸려는 아이디어 자체는 고대에 이미 나온 얘기다. 심지어 성경에서조차 이런 기술이 언급되고 있다고 한다. 에스겔 4장 12절은 사람의 배설물을 요리 연료로 사용한다고 되어 있는 것.

물론 배설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고 간단하지만 실제로 에너지를 만드는 게 간단한 건 아니다. 배설물 뿐 아니라 쓰레기까지 섞여 버리는 개발도상국에 있는 일반적인 변소라면 더욱 그렇다. 에너지의 질을 좌우하는 건 탱크가 얼마나 밀폐되어 있는지이며 침전물에 포함되어 있는 수분량도 중요하다.

수세식 화장실로 에너지를 생산하려고 해도 장애물이 많다. 지난 2014년 캄팔라에선 큰 침전물 처리 공장을 가동시켰지만 첫 달 용량이 넘어 버렸다. 물처리시설 건설이나 운영도 높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캄팔라 시는 재정이 어려운데 2050년까지 인구는 현재 300만 명에서 700만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배설물 에너지 시스템은 수익을 올려 기존 인프라 운영을 돕는 게 가장 이상적일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은 경제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2017년 캄팔라의 배설물 에너지 시스템에 투자할 예정이던 투자자들은 채산성 조사 결과 생산하는 에너지보다 소비량이 더 많을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포기해버리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일부에선 미래 기술에 기대를 걸고 있다. 자니키인더스트리(Janicki Industries)는 빌앤멜린다재단 지원을 받아 옴니 프로세서(Omni Processor)를 개발했다. 인간 배설물에서 깨끗한 식수를 추출해주는 것이다.

프로토타입 모델 크기는 1,200m2로 하루 66톤 고형 배설물에서 2만 2,000리터 물을 만들 수 있다. 10만 명에게 공급 가능한 양이다. 물을 빨아들여 고체 연로화된 물질은 소각된 기계의 증기엔진 에너지 역할을 해 전력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증기는 건조 공정에도 이용된다. 옴니 프로세서는 100∼200kW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미국 일반 가정 170곳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진행 중인 시험 운용에선 거의 매일 4년간 가동하고 있다. 그간 기술 효율이 크게 높아졌지만 초기에는 이상적인 처리 성능 기준으로 하루 80∼85% 수준이던 게 지금은 95∼100% 확률로 최대 효율로 작동한다고 한다.

수많은 시스템은 경제적 채산성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 배설물을 전기로 바꿔도 만일 송전망이 없다면 혹은 바이오가스를 캔에 포장해 아무도 갖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또 정부가 에너지 부문을 장악하고 민간기업이 에너지를 팔 수 없는 경우는? 배설물 처리가 시급한 지금도 이런 문제는 개발도상국에 존재하는 현실적 장애다.

또 인프라와 기술도 아직 큰 장애물이다. 수익을 창출하는 게 어렵고 여전히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캄팔라에선 최근 오수를 바이오가스로 바꾸는 첨단 플랜트를 세웠다. 우간다 정부가 주도하고 아프리카개발은행, 유럽연합 등이 지원한 이 공장은 하루 1,200만 갤런 하수를 처리해 미국 일반 가정 530곳 분량 전력에 해당하는 630kW 에너지 생산이 기대되고 있다.

어쨌든 변을 이용한 에너지는 재생 에너지인 건 분명하다. 다만 환경 보호적 의미로 깨끗한 에너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량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 지금은 어떤 방법으로든 배기가스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방법보다 배설물 에너지 쪽이 환경에 더 좋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예를 들어 전 세계 운수 부문 대부분이 바이오가스를 채택한다면 배기가스 배출량은 석유를 이용할 때를 100%로 한다면 49∼84% 수준까지 낮아질 것이라고 한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뉴스레터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