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인간 체내에 서식하는 세균이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게 주목받고 있다. 여성 질에 서식하는 세균총도 다양한 건강 상태에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하버드대학 위스연구소 연구팀이 질 내 세포 환경을 재현한 바기나칩(Vagina Chip)을 개발했다고 보고했다. 이에 따라 질 내 세균총에 대한 연구가 더 진전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인간 체내에 서식하는 세균에 초점을 맞춘 연구로는 장내 세균총에 주목한 게 많지만 장과 비교해 무시되기 십상인 질 내 세균총도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한다. 질 내 박테리아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박테리아 질염은 생식에 맞는 연령 여성 거의 30%가 앓고 있으며 에이즈를 포함한 성 감염과 조산 위험을 높이며 치료비는 연간 48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세균성 질염은 보통 항생제로 치료되고 있지만 재발하는 경우가 많고 골반 내 감염증이나 불임증 등 합병증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질내 세균총을 개선하기 위한 치료법 개발에 있어 문제가 되는 건 인간 질내 세균총은 일반적인 동물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락토바실러스속은 인간 질내 세균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른 포유류 질내 세균 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 미만이라고 한다.
연구팀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설립한 빌앤멀린다게이츠재단 자금 제공을 받아 질 내 세포 환경을 재현한 바기나칩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박테리아 질염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과 테스트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기나칩은 크기가 불과 2.54cm 정도로 작은 디바이스다. 연구소가 개발한 마이크로 유체 장기 칩 플랫폼을 이용해 폴리머 칩 상층에 인간 질 상피 세포를 투과막을 사이에 두고 반대쪽에 자궁 섬유아세포를 배치해 질 벽 구조를 재현했다고 한다.
5일간 배양 기간을 거쳐 바기나칩은 인간 질 조직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분화 세포로 이뤄진 다중 층을 형성했다. 여기에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을 주면 칩에 포함된 세포 유전자 발현 패턴이 변화해 인간 몸과 마찬가지로 점액 생산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후 건강한 인간 질내 세균총에 많이 보이는 락토바실러스속 세균을 바기나칩에 도입한 결과 세균 콜로니가 형성되어 젖산 생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젖산은 질 내 수소이온지수 pH를 낮춰 산성으로 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한 박테리아 번식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락토바실러스속 박테리아를 도입하면 조직 내를 순환하는 염증성 분자 수가 감소하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세균성 질염과 관련한 가르도넬레라 바기나리스, 프리보테라 비비아, 아토포븀 바기나 등 세균을 바기나칩에 주입하면 pH 상승이나 질 상피세포 손상, 염증 유발성 사이토카인 증가 등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확인됐다고 한다.
연구팀은 질내 세균총은 질 건강과 질병 제어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출생 전 태아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바기나칩은 숙주와 미생물총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잠재적 프로바이오틱스 치료 개발을 가속화할 매력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또 여성 건강이 전 인류 건강에 중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졌지만 여성 생리 기능을 연구하는 도구 개발은 늦고 있다며 새로운 전임상 모델은 박테리아 질염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 뿐 아니라 여성 생식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