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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가 제록스 복사기로 소련 대사관 기밀문서를…

서방 자유주의 진영과 동구권 사회주의 진영이 격렬하게 대립하던 냉전 하에서 각국 첩보기관은 상대방 진영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암약하고 있었다. 미국 첩보기관인 CIA는 복사기 제조업체인 제록스와 협력해 워싱턴DC에 있던 소련 대사관 기밀문서를 훔쳤다고 한다.

미국은 냉전 하에 정찰기와 스파이 등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상대방 정보를 수집했다. 그 중에서도 제록스와 손잡고 진행한 비밀 작전은 상당히 큰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냉전이 본격화된 1962년 CIA는 소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가운데 한 미국인이 1개월에 1회 빈도로 워싱턴DC 소련 대사관에 출입해 누구도 의심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미국인은 소련 대사관에서 사용하던 제록스 복사기 수리를 맡았다. 수리공은 유지 보수를 위해 복사기 내부까지 만질 뿐 아니라 다양한 공구와 부품을 바닥에 펼쳐도 의아하게 생각되지 않는 존재였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CIA는 제록스 부사장이던 존 데사우(John Dessauer)와 접촉해 극비 프로젝트팀을 설립하는 데 성공했다. 리더는 제록스에서 정부 관련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도널드 캐리(Donald Cary)가 맡았고 광학 엔지니어 켄트 햄필(Kent Hemphill), 전기 엔지니어인 더글라스 웹(Douglas Webb), 사진 기술 특화 엔지니어인 제임스 영(James Young), 소련 대사관에서 사용하던 제록스914 개발에 종사한 기계 엔지니어 레이 조포스(Ray Zoppoth)가 멤버로 합류했다.

아무리 수리공이 소련 대사관에 출입할 수 있더라도 내부 문서를 직접 훔치는 건 너무 위험하다. 따라서 프로젝트팀은 제록스 복사기에 복사된 문서 내용을 훔치는 장치를 개발했다. 복사된 내용을 훔치는 장비는 소련 기밀 문서만 입수하는 게 아니라 소련 스파이가 입수한 미국 기밀문서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사내에서고 극비였기 때문에 보통 사옥에서 연구하지 못하고 팀은 버려진 볼링장을 빌려 연구를 진행했다. 엔지니어가 제록스914에 복사된 문서를 이미지화하는 방법을 검토한 결과 복사기 내부에 배터리로 구동하는 줌 렌즈 카메라를 설치하는 방향으로 개발을 진행하게 됐다고 한다.

연구팀은 벨앤하웰(Bell & Howell) 최신 카메라를 구입하고 복사할 이미지를 감광장치에 쓰는 거울에 동영상 카메라 렌즈를 향하게 해 복사기를 실행했을 때 카메라가 촬영하는 광센서를 통합한 장치를 개발했다. 전체 길이는 18cm 정도였고 위에 8mm 필름을 감는 스풀도 설치해야 했지만 제록스914에는 이 카메라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존재하고 있었다. 또 카메라 소리는 능숙한 상태로 복사기 자체 소음으로 막을 수 있었다.

실제로 연구실에서 복사기를 실험한 뒤 팀은 제록스 사무실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복사한 내용을 촬영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카메라 필름을 현상한 결과 만화나 농담 등 모든 종류 문서를 읽을 수 있었다.

스파이 장비를 개발한 뒤 조포스는 디즈니랜드 이스트(Disneyland East)라는 코드명으로 불리던 CIA 건물 지하실에 가서 에이전트에 카메라 설치 방법을 가르쳤다. CIA 요원 훈련을 받은 수리공은 소련 대사관 복사기에 장치를 설치하고 다음 방문할 때 장치를 새 것으로 교체, 낡은 장비를 CIA에 전달했다.

이 첩보 시스템은 1963년 운영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록스에 들어간 주문 수량을 고려하면 미국은 적대국 뿐 아니라 동맹국 복사기에도 스파이 장비를 설치하고 문서를 훔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1969년 기업이 경쟁업체 정보를 훔치기 위해 같은 방법을 고안했다가 검거됐고 이후 소련은 복사기 검사를 더 엄격하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소련 대사관 복사기에 설치되어 있던 스파이 장비를 발견했는지 혹은 CIA가 장치 설치를 중단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조포스는 이후에도 수십 년간 아내와 아이 8명에게도 자신이 참여한 프로젝트에 대해 비밀을 유지했다고 한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용환 기자

대기업을 다니다 기술에 눈을 떠 글쟁이로 전향한 빵덕후. 새로운 기술과 스타트업을 만나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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