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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요리가 사람을 매료시키는 이유

덴마크에서는 6월 매운 인스턴트 라면인 불닭볶음면이 너무 매워 급성 중독 위험이 있다며 리콜됐다. 식품 안전 당국이 건강에 해롭다고 판단할 정도로 맵고 매운 요리가 왜 사람을 끌어 모을까. 영국 헐 대학 전문가가 설명해 눈길을 끈다.

먼저 왜 고추를 매운 것으로 느낄까. 고추를 먹었을 때 맵게 느끼는 이유는 고추 등에 포함된 캡사이신이라 불리는 화학 물질 때문이다. 주로 입을 비롯한 소화기관과 코, 피부 등 감각기관 표면에 있는 TRPV1이라는 단백질에 캡사이신이 결합하면 맵기가 유발된다고 한다. 보통 TRPV1은 아픔을 동반하는 고온을 감지하는 능력과 관련이 있지만 캡사이신이 결합하면 TRPV1이 낮은 온도에서도 유발되어 해당 부위 붓기, 발한, 불쾌감 등 화상을 입은 것과 비슷한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캡사이신에 의해 유발되는 이런 반응은 온도 수용체 연구에 도움이 되어 2021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으로 이어졌다.

고추가 캡사이신을 생산하도록 진화한 이유는 야생 포유류가 먹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여겨진다. 인간을 제외하고 고추를 먹을 수 있는 포유류는 TRPV1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일부 나무두더지류(Scandentia)에 국한된다.

반면 조류는 열 감지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에 캡사이신 영향을 받지 않아 고추를 잘 먹을 수 있다. 실제로 조류가 고추를 먹고 종자를 널리 퍼트리면서 고추 서식지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는 이 원리를 응용해 야생조류 먹이에 고추 가루를 섞으면 설치류가 먹이를 먹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고추 매운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인 스코빌지수(Scoville scale)는 처음으로 맵기 테스트를 고안한 화학자 윌버 스코빌(Wilbur Scoville) 이름에서 유래했다. 스코빌이 1912년 고안한 테스트는 고추에서 추출한 캡사이신을 희석해 자원봉사자가 맵기를 느끼지 않을 때까지 희석한 정도로 스코빌지수를 표시하는 주관적인 방식이었지만 1980년대에는 추출한 캡사이신 농도를 직접 측정하는 객관적 방법으로 대체됐다.

전혀 맵지 않은 피망은 스코빌지수 0, 타바스코 소스에 쓰이는 타바스코 고추는 최대 5만,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인 페퍼 X(Pepper X)는 270만에 이르는 스코빌지수를 기록했다. 한편 여러 온라인 자료에 따르면 덴마크에서 리콜된 불닭볶음면 스코빌지수는 9,000 정도라고 한다.

극도로 매운 걸 먹는 건 강렬한 경험이며 일부 사람은 맵기가 주는 자극을 즐기고 있다. 너무 맵고 고통스러워 신경전달물질 엔돌핀이 분비되어 기분이 업되는 느낌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당연히 맵기는 화상과 같은 반응을 유발하므로 고추 등을 먹다가 숨이 막히거나 눈물이 날 정도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또 고추를 지나치게 먹으면 과도한 발한, 구토, 위장 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매운 음식에 대한 장기적인 해로운 영향을 보여주는 증거는 많지 않다고 한다. 물론 2023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를 사용한 스낵과자(Paqui One Chip Challenge)를 먹은 한 소년이 몇 시간 만에 사망하는 사례도 보고됐다.

만일 고추를 먹고 너무 매워서 견딜 수 없다면 당황해서 물을 마시면 캡사이신이 입 주위로 번져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 대신 캡사이신은 지방에 잘 녹으므로 전문가는 전유나 요구르트, 치즈 등 고지방 식품을 먹는 걸 추천한다. 또 레몬이나 라임주스 등 산성 식품은 맵기를 중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빵이나 밥 등 전분 식품은 캡사이신을 흡수해 입 안을 진정시켜 준다고 한다.

매운 음식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한편 지나치게 매운 경우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적절한 수준에서 맵고 자극적인 맛을 즐기되 너무 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만일 너무 매운 걸 먹게 되면 지방, 산성, 전분 식품 등을 섭취하여 입 안을 진정시키는 것이 좋다. 매운 맛에 대한 개인 선호도와 체력을 고려해 균형 있게 즐기는 게 바람직하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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