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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제조는 기술‧경제 넘은 정치적 시대에 돌입했다”

현대 사회에서 반도체 중요도는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PC나 스마트폰, 자동차, 가전 제품 등 생활 모든 장면에 반도체가 존재하고 있다. 이런 반도체 제조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 기술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전문가인 벤 톰슨이 반도체 제조는 기술과 경제를 넘어 정치적 시대에 돌입했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지난 7월 미국 주요 반도체 업체인 인텔 주가가 하락하고 AMD가 인텔 시가총액을 넘어서는 사태가 발생했다. 반도체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양사지만 인텔은 자사 공장에서 반도체를 제조하는 반면 AMD는 반도체 설계만 하는 팹리스 기업이며 제조는 외부 반도체 제조사인 파운드리가 맡는다는 게 크게 다르다.

미국 사업가였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은 2004년 저작인 미래 기업의 조건(Seeing What’s Next)에서 인텔은 엄격한 제조 공정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고객에게 맞춤형 제품을 유연하게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미래 판매 사이클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든 바 있다. 톰슨은 이 지적을 다루며 실제로 지적대로 문제가 인텔에서 발생했다고 말한다. 반대로 자사 공장이 없는 AMD 같은 팹리스 기업은 더 유연한 제품 제조공정 변경을 실시한 덕에 약진을 이뤘다는 것이다.

또 인텔은 PC나 서버에 관해 올바른 지견을 갖고 있었지만 스마트폰 등장과 보급은 상정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전원에서 공급되는 전력으로 움직이는 PC나 서버와 달리 배터리로 동작하는 스마트폰은 성능 이상으로 효율성이 중시된다는 점이 인텔 칩 제조 전망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제조 체제를 스마트폰 전용 칩 설계에 적응시키는 게 늦어버렸다.

반면 대만에 본사를 둔 TSMC와 삼성전자 같은 파운드리는 더 유연하게 성능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칩 설계에 대응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는 반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파운드리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중요한 전환점으로 톰슨이 지적하는 건 인텔이 아직 고가로 실장이 곤란하다고 생각하던 2014년 TSMC가 EUV 리소그래피를 도입한 것이다. EUV 리소그래피는 다양한 광선을 이용해 초소형 회로를 칩 상에 형성하는 장치로 유일한 제조 기업인 네덜란드 기업 ASML 시가총액은 이미 인텔을 상회하고 있다.

톰승은 인터넷 1단계가 기술에 의해 정의되어 무엇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알아내는 게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또 21세기 들어 몇 년 뒤 돌입한 인터넷 2번째 단계는 경제에 의해 정의된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은 당초 가정과는 달리 경제력을 분산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일하고 있다. 경제에 의해 정의되는 인터넷에선 지리적 제약이나 경제적 한계 없이 경쟁이 발생해 대량 투자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규모까지 경제성을 갖춘 기업이 승자가 되어 방대한 이익을 얻는다. 이런 경제 규모 확대가 설계부터 제조까지 통합한 인텔의 접근 방식에 막혀 TSMC 같은 파운드리가 대두하는 요인이 됐다.

톰슨은 인터넷이 이런 2단계에 그치지 않고 이후 3단계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3단계에선 인터넷을 정의하는 건 정치이며 이미 반도체 산업은 정치에 따라 달라지는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아시아 순방을 하며 대만을 방문해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때 펠로시 의장은 TSMC 류더인 회장과 회담했고 대만 차이잉원 총통은 대만과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 가치관을 공유할 뿐 아니라 경제 발전과 민주적 공급망에서 계속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주의와 자유, 인원을 이유로 대만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 지원에 더해질지 모르는 최대 이유는 칩과 TSMC에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칩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TSMC가 중국 근처 대만에 있다는 건 미국에 있어선 상당히 고통스러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류더인 TSMC 회장은 경제 분야에서 자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제조 기술을 높이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미국이 압력을 가해 EUV 리소그래피 판매가 금지되고 있으며 판매 금지 범위를 옆 리소그래피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처럼 이미 반도체 산업에는 정치 의지가 깊게 얽혀 있어 단순한 기업 활동 틀을 넘은 역학이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사인 SMIC는 14nm 제조공정 이상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고성능 기기 수입을 금지한 상태에서 7nm 제조공정 제조를 시작했다는 게 지난 7월 보도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상원 의회는 아시아 업체와 경쟁하는 인텔이나 글로벌파운드리 등 반도체 기업에게 5년간 527억 달러 자금을 제공하는 CHIPS법을 통과시켰다. 하원에서도 가결될 전망인 이 법안에선 지원을 받은 기업은 중국 등 국가에서 28nm 제조공정보다 고도의 반도체 제조 능력을 확대하는 걸 금지하고 미국 본토 반도체 제조 능력을 높이려는 의향을 보인다. 톰슨은 CHIPS법이 반도체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만 최종 형태는 점점 정치의 문제가 되어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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