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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농업을 모두 유기농업으로” 실패한 스리랑카

최근에는 대량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한 공업적 농업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화학 비료, 농약 등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 농업에 대한 주목이 모아지고 있다. 인도양에 떠있는 스리랑카에선 화학비료나 농약 수입을 금지하고 국내 농업을 모두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대담한 정책이 실행됐지만 이는 농가에게 큰 타격을 줘서 실패로 끝났다. 왜 스리랑카 유기농업정책은 실패했을까.

이를 통해 쌀과 기타 작물 수확량이 기존 2배 이상이 됐다. 덕분에 1970년대 심각한 식량 부족에 처했을 때에도 수확량이 많았던 차와 고무 수출로 외화를 획득하고 식량을 타국으로부터 수입해 안정된 식량 공급을 유지할 수 있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잉여노동력이 발생해 도시화가 진행됐지만 2020년에는 비료 수입비와 보조금 총액이 5억 달러였다.

이런 가운데 2019년 대선에서 10년간 스리랑카 농업을 모두 유기농업으로 이행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이 당선됐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취임 후 유기농업으로 전환에 부정적인 국내 농업 전문가와 과학자를 유기농업으로 전환에 관한 농업 섹션에서 멀리했다. 대신 농업 장관이나 위원회에 유기농업 추진파 시민단체(Viyathmaga) 멤버를 임명했다고 한다.

라자팍사 대통령이 취임한 지 몇 개월 뒤 코로나19 유행이 발생해 스리랑카 관광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2019년에는 관광업이 스리랑카 외화 획득원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2021년 초에는 스리랑카 정부 예산과 외화 준비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따라서 라자팍사 대통령은 국내 농업 모두를 유기농업으로 이행시키는 정책을 단번에 추진해 2021년 4월 화학비료나 농약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선거 공약을 실현하는 것 외에도 비료구입비와 보조금 컷에 의한 지출 삭감이라는 이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정책에 앞서 200만 명에 이르는 스리랑카 농부는 충분한 전환 기간이 주어지지 않았고 화학 비료 대신 필요한 유기 비료 생산도 따라잡지 못했다. 그 결과 유기 농업은 기존 농업에 필적하는 수확량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에 반해 첫 6개월 만에 스리랑카 주식인 쌀 수확량은 20% 감소해 국내 가격이 50% 급등한 뒤 4억 5,000만 달러 상당 쌀을 수입하게 됐다.

또 주요 수출물인 차, 고무, 코코넛 등 수확량도 대폭 감소해 버렸기 때문에 2021년 11월에는 이런 주요 수출물에 대한 화학 비료 사용을 부분적으로 인정했고 2022년 2월에는 주요 수출물에 대한 유기 농업 전환이 중단됐다. 스리랑카 정부는 농가에게 2억 달러 직접 보상을 실시해 손실을 입은 농가에게는 한층 더 1억 4,900억 달러 보조금을 냈지만 농가는 보상이 불충분하다는 비판이 많다. 추정에 따르면 차 생산량 감소만으로도 경제적 손실은 4억 2,5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계획이 발표된 당초부터 스리랑카와 전 세계 농학자는 수확량이 크게 감소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정부는 수입 화학 비료 대신 다른 유기 비료 생산을 늘리겠다고 주장했지만 부족분을 보충하기에 충분한 비료를 국내에서 생산할 방법은 없었다. 정책에 따라 스리랑카인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스리랑카에서 유기 농업 전환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선 농업은 상당히 단순한 열역학적 법칙에 근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업 생산량은 농약, 양분, 토지, 노동력, 관개 등 농업 투입물에 크게 좌우되고 있어 인류는 오랫동안 경작하는 토지 확대와 가축 배설물로부터 만든 비료 추가로 작물 수확량을 늘려왔다. 그럼에도 200년 전까지는 전 세계 인구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지 않으면 사람을 먹이기에 충분한 음식을 생산할 수 없었다.

그런데 19세기에 들어서면 전 세계 무역 확대에 의해 해조나 물개 배설물이 화석화한 구아노(guano)가 채굴되면서 비료로 유럽이나 미국 농장에 수입되게 됐다. 기계화 진전 등과 맞물려 일부 농장에선 농업 생산성이 향상되어 잉여 노동력이 도시로 흘러들어 대규모 도시화가 진전하게 됐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를 농업에 가져온 건 20세기초 암모니아를 만들어내는 하버·보슈법(Haber-Bosch process)이 개발되어 화학비료 제조가 시작된 것이었다. 화학비료는 전 세계 농업을 재구성해 수확량을 크게 증가시켰고 삶은 크게 변화했다. 현재 80억 명에 달하는 인구가 지구에 살고 있지만 이 가운데 40억 명 분량 식량은 화학비료에 의한 수확량 증가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건 화학비료를 사는 여유조차 없는 빈곤국 농가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선진국 농가다. 선진국 사람에게 유기농 식품은 건강과 환경 보호가 결합된 옵션이지만 여전히 전 세계 농업 생산 1% 미만을 차지하는 틈새시장에 머물고 있다.

유기농업은 유기비료를 많이 사용해 비참할 정도로 낮지 않은 수확량을 유지할 수 있지만 이게 잘 기능한 건 대규모로 산업화된 농업 시스템 내에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농가가 유기농업으로 이행하는 건 에너지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스리랑카 같은 국가별 유기 농업으로 이행하는 경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유기비료 생산만이 목적이 된다. 작은 국가에 유기비료를 많이 생산하기에 충분한 토지가 없다는 건 확실하며 환경 파괴도 있다는 지적이다.

EU는 몇 년간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 전환을 약속하고 있으며 농약과 화학비료 과도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도 시행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론 여전히 화학비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또 부탄은 2020년까지 유기농업으로 완전 이행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현재도 많은 농민이 화학비료에 계속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한 국가 농업을 통째로 유기농업으로 이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적절한 화학비료 사용과 바이오엔지니어링을 이용한 토양 개선, 더 농약이나 제초제가 적어도 괜찮은 유전자 변형 작물 도입 등 기술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농가로부터 삶에 중요하다고 증명된 오래된 도구를 없애는 게 아니라 새로운 도구를 주며 농업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스리랑카는 유행에 의한 관광업 감퇴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물가 상승이나 통화 하락 등 영향으로 2022년 7월 총리가 국가 파산을 선언했다. 대규모 항의 시위가 발발하는 가운데 스리랑카 대통령은 7월 9일 사임 의향을 표명하고 13일 군용기로 몰디브에 국외 탈출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원영 기자

컴퓨터 전문 월간지인 편집장을 지내고 가격비교쇼핑몰 다나와를 거치며 인터넷 비즈니스 기획 관련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디지털 IT에 아날로그 감성을 접목해 수작업으로 마우스 패드를 제작 · 판매하는 상상공작소(www.glasspad.co.kr)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IT와 기술의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마음으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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