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는 통치 하에 있던 국가에선 간행된 책을 검열하고 신도에 위험을 미친다고 간주한 책을 발매 금지 처분하는 금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이 존재했다. 이 금서 목록은 당시 의학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금서 목록이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처음 제정된 건 1559년이다. 종교재판을 중시하는 공포 정치를 펴던 당시 교황인 바오로4세는 교회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신도가 읽는 걸 금지하는 도서를 목록화한 가톨릭 교회 첫 금서 목록인 폴린 목록(Pauline Index)을 공포했다. 이 목록에서 개신교 등 종교가 저술한 책을 모두 금지했을 뿐 아니라 가톨릭 신자가 저술한 경우에도 믿음을 흔드는 내용을 담은 책이나 익명 작성자 도서, 번역본 성경도 금지했다.
이 가톨릭 교회 조치에 대해 다양한 단체가 반대의 뜻을 나타냈지만 그 중에서도 반발이 컸던 건 의학계였다. 당시 유럽 의학계에선 책을 통해 의학을 배우는 방법이 일반적이었지만 폴린 목록에는 동시대를 대표하는 의사 47명이 저술한 의학 서적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게 원인이다. 현존하는 서한에서 피렌체공 전속 의사는 금서 목록에 대해 큰 불편을 낳고 있다며 30년이나 40년에 걸쳐 적극적으로 공부를 해온 모든 의사가 이젠 책을 빼앗겨 버렸으며 만일 목록 제정에 의사와 철학자가 참여했다면 이런 건 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던 부분도 남아 있다.
이 목록 발표 2개월 이후에는 볼로냐대학 지도자들이 종교와는 무관하고 유용한 필수 의학 서적 목록을 만들어 로마에서 파견된 대사에게 몇 차례나 금서 목록에서 제외해달라고 호소한 기록이 남아 있다. 대사는 볼로냐대학 측에 동정적이었는지 솔직히 말해 목록이 너무 오래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서 목록은 주로 도서 발행과 유통에 대한 조치이며 금서로 제정되어 있어도 이단심문관 허가가 있으면 목록 책을 읽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볼로네즈 의사가 자신이 소유한 의학서를 보기 위해 신청한 기록이 있는데 1566년과 1595∼1596년 2회만 허용됐고 그는 친구와 주고받은 서신에서 소유하던 의학 서적이 불탔다고 기록했다. 분서 영향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1564년 교황 바오로4세 사후 교황이 된 비오4세는 개정이라고 할 수 있는 금서 목록을 공포했고 1571년 금서 목록을 시대에 맞게 개정하는 전문위원회도 설치한다. 공식적으로 금서 목록이 폐지된 건 첫 금서 목록 공포 400년 이상 지난 1966년 6월 14일이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