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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아프리카 코끼리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인간은 서로를 이름이나 별명으로 부르며 때론 애완동물이나 가까운 동물에게 이름을 붙인다. 케냐 사바나에 서식하는 아프리카 코끼리 울음소리를 분석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야생 코끼리가 독자적인 이름을 갖고 있으며 이 이름을 사용해 서로를 부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콜로라도 주립대학 연구팀은 오랜 기간 동안 야생 아프리카 코끼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아프리카 코끼리가 이름과 같은 울음소리를 사용해 서로를 부르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프리카 코끼리 울음소리에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검증한 연구는 없었다고 한다. 연구팀은 케냐 삼부르 국립보호구역과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1986년부터 2022년까지 녹음된 아프리카 코끼리 울음소리를 기계학습 모델로 분석해 울음소리 속에 이름으로 여겨지는 게 포함되어 있는지를 연구했다.

코끼리 울음소리라고 하면 큰 소리를 상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실제로는 울음소리 대부분이 럼블(rumble) 소리라 불리는 부분적으로 인간 가청 영역을 벗어나는 저주파 소리다. 연구팀은 이름이 이 럼블 소리에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분석도 럼블 소리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고 한다.

분석에서는 기계학습 모델에 울음소리 특성을 나타내는 수치를 제공하고 각 울음소리가 어떤 아프리카 코끼리를 향해 발신된 것인지 알려줬다. 모델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 개체에게 향한 울음소리 패턴을 학습한 뒤 다른 울음소리 샘플에 대해 이 울음소리는 어떤 개체에게 향했는지 예측했다. 모델 훈련에는 99마리 개체가 발신한 울음소리 437건이 사용됐다고 한다.

연구팀이 개발한 모델은 전체 27.5%에서 울음소리 수신자를 식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무작위로 추측한 경우보다 훨씬 뛰어난 수치이며 적어도 일부 럼블 소리에 의도한 수신자를 식별할 수 있는 이름과 같은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 결과만으로는 울음소리를 발신하는 개체에 따라 독특한 음성 패턴이 있어 그 개체가 어떤 개체에게 가장 말을 걸기 쉬운지에 대한 경향성으로부터 수신 개체를 추측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아프리카 코끼리 울음소리에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연구팀이 울음소리를 더 분석한 결과 같은 아프리카 코끼리 울음소리라도 수신자에 따라 유사도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울음소리를 발신한 개체에 고유한 패턴이 있는 게 아니라 울음소리를 받아들이는 수신자 쪽에 고유한 요소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연구팀은 울음소리를 받은 아프리카 코끼리가 자신의 이름에 반응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코끼리 17마리에게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울음소리를 들려주는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이 멀리서 이름이 포함됐다고 생각되는 울음소리를 아프리카 코끼리에게 들려준다. 그러자 코끼리는 귀를 크게 펴고 펄렁이며 울음소리에 반응했다. 실제로 코끼리가 자신의 이름을 들었을 때 이쪽을 쳐다본 것처럼 보인다. 연구팀에 따르면 코끼리가 자신의 이름이 포함된 울음소리를 들으면 그렇지 않은 울음소리와 비교해 평균 128초 더 빨리 울음소리 발신원에 다가가고 평균 87초 더 빨리 울음소리로 답했으며 2.3배 더 많이 발성했다고 한다. 이 결과는 아프리카 코끼리가 문맥과 무관한 울음소리라도 그 울음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이름을 포함한 울음소리를 내는 것으로 여겨지는 동물은 아프리카 코끼리 뿐만이 아니다. 과거에는 밴둥돌고래와 앵무새도 개체를 식별하는 콜사인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하지만 밴둥돌고래나 앵무새의 경우에는 수신자 울음소리를 모방해 이를 콜사인으로 활용하는 반면 수신자 울음소리와 유사성이 없는 아프리카 코끼리의 사례는 드문 편이다.

연구팀은 흥미롭게도 아프리카 코끼리가 특정 수신자에게 보낸 울음소리는 다른 개체에게 보내는 울음소리와 비교해 수신자 울음소리와 유사성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이 발견은 아프리카 코끼리가 단순히 상대방 울음소리를 모방하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부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아프리카 코끼리가 복잡한 사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 개체를 이름으로 식별할 필요가 있으며 아프리카 코끼리가 추상적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아프리카 코끼리 울음소리가 어떻게 발달했는지 연구하면 인간 언어의 진화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용환 기자

대기업을 다니다 기술에 눈을 떠 글쟁이로 전향한 빵덕후. 새로운 기술과 스타트업을 만나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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