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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외 문명, 떠돌이 행성 타고 이동 가능성?

SF 작품에선 고도의 문명을 가진 인간이나 우주인이 항성간 이동하는 항성간 항행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재 지구 문명 기술력에선 태양계에서 다른 행성게로 이동하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이런 항성간 항행에 대해 휴스턴 커뮤니티 칼리지 천체학자인 이리나 로마노브스카야(Irina K. Romanovskaya)가 지구 외 고급 문명은 우주선이 아니라 떠돌이행성(rogue planet)을 이용해 항성간 항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급속도로 기술력을 발달시켜 왔지만 그래도 현재 시점 기술력에선 탐사기가 목성 궤도에 도달하기까지 5년이나 걸린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인 프록시마 켄타우리조차 광속으로 이동해도 4년이 걸리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항성간 항행은 흥미로운 얘기가 된다. 프록시마 켄타우리계 행성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려면 승무원 몇 명이 필요한지 고찰한 연구에선 2018년 시점 기술력으로 만든 우주선은 행성 도달까지 6,300년이 걸려 최소한 승무원 98명이 우주선 내에서 세대를 이어가야 한다는 결과를 보여줬다.

그런데 로마노브스카야는 고도로 발달한 지구 외 문명은 항성간 항행에 우주선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항성이나 다른 천체로부터 중력적으로 해방된 떠돌이행성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로마노브스카야는 지구 외 문명이 행성계에 도달, 탐사, 식민지화를 위해 떠돌이행성을 항성간 수송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고 밝혔다.

지구 외 태양과 같은 항성으로부터 멀어진 떠돌이행성은 항성 빛이나 열이 닿지 않기 때문에 어둡고 추운 거주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떠돌이행성에서도 방사선 동위체 붕괴에 의한 지열이 생겨 활발한 지질 활동이 있어 행성 표면에 액체상 물이나 대기를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또 고도의 문명은 의도적으로 떠돌이행성 환경을 바꾸거나 에너지원을 개발해 생명 유지에 쩍합한 것으로 할 수도 있다고 로마노브스카야는 지적하고 있다.

그는 지구 외 문명이 떠돌이행성을 이용해 항성간 항행을 하는 4개 시나리오를 제안하고 있다. 첫째는 우연히 부근을 통과한 떠돌이행성을 이용하는 것. 2020년 연구에선 은하계 전체에 500억 개 떠돌이행성이 있을 가능성이 시사되고 있으며 원래 있던 행성이 항성계 중력 이벤트에 의해 방출되는 케이스 외에 입자가 무거운 천체에 집적하는 강착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고 보이고 있다. 또 태양계 오르트 구름(Oort cloud)처럼 행성계 바깥쪽에 위치한 천체군에서 행성이 방출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태양계로부터 17∼23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숄츠별(Scholz’s Star)은 7만 년 전 오르트 구름 바깥쪽을 통과했다고 계산되어 행성계 가장자리를 다른 천체가 긁는 건 있을 수 있다. 만일 어떤 실존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고도의 지구 외 문명이 있었다면 행성계 주위에 있는 떠돌이 행성 위치를 예측해 비교적 가까이 왔을 때 탑승해 항성간 항행에 이용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둘째는 떠돌이 행성을 자신의 행성 근처까지 가져오는 것. 충분한 기술력을 가진 지구 외 문명은 오르트 구름 같은 천체군에서 어색한 행성을 선택하고 추진 시스템을 이용해 거주하는 행성 근처까지 유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지하 쉼터나 기타 인프라를 건설하고 대기 조성을 바꾸거나 0에서 생성해 떠돌이 행성에서 더 살고 쾌적한 환경으로 만들 수 있다.

물론 멀리 있던 행성을 억지로 행성계 내부로 끌어올리면 다른 행성 궤도가 혼란하는 등 영향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항성 팽창이 시작되고 있고 허비터블존 변화와 함께 문명이 행성계 바깥으로 이동하고 있었을 경우 이 영향은 경감될지도 모른다는 것.

셋째는 상당히 긴 공전 주기를 가진 준행성을 이용하는 것. 긴 주기를 가진 천체를 이용해 행성계 밖으로 나오는 시나리오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게 가능한 건 이미 항성에서 적어도 60천문단위 거리까지 행성계를 탐사하고 있는 고도의 문명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마지막은 행성에서 튀어 나오는 천체를 이용하는 것. 죽음에 이른 항성이 팽창하면 어딘가 시기에 행성계 바깥 가장자리에 있는 천체가 항성 중력적 속박을 피해 행성계 밖으로 방출될 수 있다. 고도의 지구 외 문명이 이 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사전에 준비하고 떠돌이 행성이 되는 천체에 탑승해 죽어가는 항성으로부터 떨어져 다른 항성을 찾을 수 있다.

이상 시나리오는 모두 떠돌이 행성을 영구적인 집으로 파악하고 있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구명보트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든 시나리오에서 떠돌이 행성은 실존 위협에서 벗어나는 영구적인 수단으론 유용하지 않을 수 있다며 행성은 결국 액체 물 바다를 유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떠돌이 행성은 행성게에서 튀어 나오기 때문에 항성을 중심으로 주회하는 행성보다 이용 가능한 자원이 적고 계절이나 주야 등도 없다. 따라서 지구 외 문명은 떠돌이 행성을 영구적인 고향으로 만드는 대신 다른 행성계에 도달해 식민지화를 위한 성간 수송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항성 죽음과 같은 실존적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떠돌이 행성에 의한 항성간 항행을 반복해 은하 전체를 식민지화하는 지구 외 문명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부모가 되는 문명은 다른 행성계에 독특하고 자율적인 자문명을 만들어낸다는 것.

로마노브스카야는 만일 지구 외 문명이 떠돌이 행성을 이용해 항성간 항행을 하고 있는 경우 태양돛과 성간 물질 상호 작용에 의한 사이클로트론 방사나 부자연적인 적외선 방사 등 어떤 기술적 흔적이 있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떠돌이 행성으로부터 이런 흔적을 검출해 지구 외 문명 존재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용환 기자

대기업을 다니다 기술에 눈을 떠 글쟁이로 전향한 빵덕후. 새로운 기술과 스타트업을 만나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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