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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경제 제재로 얼마나 피해를 입고 있을까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하면서 이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엄격한 경제 제재를 실시했다. 하지만 한때 급락했던 러시아 루블 시세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수준으로 돌아서는 등 경제 제재 효과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경제 제재 효과에 대해 러시아 경제 전문가인 파리정치대학(Institut d’Etudes Politiques de Paris) 경제학 교수 세르게이 그리에프가 설명해 눈길을 끈다.

그에 따르면 개전 전 러시아 경제는 정체 기색이었지만 거시 경제 관점 그러니까 러시아 전체 경제에 있어선 위기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태는 경제학자 사이에선 늪에 박혀 있기 때문에 절벽에서 떨어질 걱정은 없다고 표현된다고 한다.

실제로 2013년 이후 러시아 경제는 연평균 1% 전후 GDP 성장률로 추이했다. 러시아 경제에는 부패와 정치적 고집에 묶인 상습관, 국제 경제 고립이라는 과제가 있었지만 정부 채무가 적고 충실한 정부계 펀드 존재, 풍부한 외화라는 강점이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는 완만한 경제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또 러시아가 2014년 크리미아 반도를 점령했을 때 미국이 러시아를 국제은행간 통신협회 스위프트(SWIFT)에서 뺀다고 협박했기 때문에 러시아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스위프트를 대체하는 독자 금융 네트워크인 금융 메시지 전송 시스템 SPFS를 개발해 거의 러시아 한정이지만 2017년부터 SPFS 운용을 개시하고 있었다.

이런 배경 덕에 경제학자 사이에선 러시아를 경제 제재에 견딜 수 있는 요새에 비유하는 게 통례였다. 하지만 실제로 전쟁이 시작되자 서방은 원래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경제 제재를 수행했다. 구체적으론 러시아 은행에 대한 스위프트 배제 뿐 아니라 러시아중앙은행까지 자산 동결 제재 대상으로 삼고 정부계 펀드를 포함한 외화 보유고도 동결해버렸다.

외화 보유고 그러니까 러시아 정부가 보유한 외국 자산을 사용할 수 있다면 루블이 하락할 것 같아도 외화 보유고를 팔아 루블 가격을 유지하고 인플레이션, 그러니까 물가 상승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경제 제재로 인해 러시아가 이런 자산에 접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러시아에선 금융 공황이 발생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중앙은행은 금리를 9.5%에서 20%로 끌어올리면서 자본 움직임을 규제해 금융 시장을 폐쇄했다. 금융 시장이 폐쇄됐다는 건 투자자가 자산을 팔지 않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자산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인플레이션율은 개전 3주간 주 2% 이후에는 주 1%로 추이했다. 1%라고 하면 작게 보이겠지만 연율로 환산하면 68% 폭등에 해당한다.

더구나 수출 규제와 기업 보이콧으로 인해 러시아 경제적 고립은 더 심각해졌다. 예를 들어 미국과 캐나다는 러시아에서 석유 수입을 금지하고 유럽 기업도 이를 따르고 있다. 또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로 선진 기술 수출을 금지하고 민간 기업도 금수 조치에 합류했다. 이로 인해 이케아와 맥도날드 같은 익숙한 기업에서 에어버스, 보잉 같은 항공 우주 장비 제조사까지 많은 기업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중단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특히 문제는 러시아 산업 대부분이 서양 기술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 자동차 산업은 수입 부품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 진출한 자동차 제조사는 잇달아 공장 조업을 중단하고 있다. 이 영향으로 러시아 2022년 내 3월 자동차 판매 대수는 전년 동월 3분의 1로 내려앉았다. 이는 인플레이션에 노출되면 사람들은 내구 소비재를 사려고 하기 때문에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태로 러시아 경제 성장 전망은 대폭적인 수정을 강요받고 있다. 전쟁 전 2022년 러시아 GDP 성장률은 코로나19 유행에 의한 불황 회복을 반영해 +3%로 추정됐지만 3월 러시아중앙은행이 발표한 GDP 성장률 예상은 -8%였다. 더구나 유럽부흥개발은행은 -10%로 전망하고 있으며 워싱턴을 거점으로 하는 국제금융협회는 -15%로 예측한다. -10%가 되면 러시아에 있어선 구 소련 붕괴 후 맞은 1990년대 이후 최악의 불황이 된다.

그리예프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에 있어서 앞으로가 본격적인 고난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유는 4가지다. 첫째는 제재에 의한 전 세계 자본이나 기술로부터 격절되고 있다는 점. 둘째는 규제 강화로 자국 내 기업 비즈니스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점. 다음은 전쟁으로 인해 엔지니어나 전문가가 국외로 유출되고 있는 점. 마지막은 서방에 의한 추가 제재 가능성이다.

4번째 추가 제재란 러시아 전쟁 범죄 증거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유럽 정상은 러시아로부터 연료를 규제 대상으로 하려 하며 이는 석유와 가스만으로 세입 40%, 수출액 60%를 차지하는 러시아 경제에 있어선 큰 통증이 될 수 있다. 또 서방과 협조해 중국에서도 압력을 가하면 중국 자금과 기술이 러시아로 흐를 전망도 흐려진다.

이런 점에서 그리예프는 중앙은행에 의한 통제가 루블을 지원하고 인플레이션을 둔화시키는데 성공하더라도 이런 근본적인 요인으로 인해 러시아 경제가 개전 전으로 회복할 전망은 적다고 말한다. 러시아 경제가 1∼2년 뒤 침착을 보일 가능성은 있지만 이전 수준까지 회복할 수 없어 선진국 경제 진입은 계속 늦어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경제 충격이 어느 정도 러시아 정치에 영향을 줄지는 모르지만 푸틴 대통령이 점점 불행해지는 러시아인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경찰과 군대, 선전전에 자원을 더 써야 하는 건 확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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