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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대비하던 해상 위 백악관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이 격렬하게 대립했던 냉전 시대에는 어느 한쪽이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핵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항상 우려됐다. 미 해군은 핵전쟁에 대비해 해상 백악관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핵전쟁 위기가 현실화되던 냉전 시기 미국은 적국이 핵전쟁을 걸어왔을 때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관리를 안전한 장소에 대피시켜 정부 기능을 유지하는 방법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따라서 1960년대 실현된 게 NECPA(National Emergency Command Post Afloat). 응급 상황에서 대통령은 해상 특수 지휘함에 이송하고 전쟁 지휘를 계속하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해군은 1953년 취역한 전술지휘함 노샘프턴 CC-1 통신 설비를 강화해 1962년부터 NECPA 임무를 충당했다. 노샘프턴에는 송수신기 60기를 비롯해 통신 시설 40톤이 있으며 해상에서도 하루 3,000통 메시지를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수준으로 보면 획기적인 양이었다고 한다. 바다 위에서 대통령이 전 세계 군에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

또 1963년에는 항공모함 라이트 CC-2가 지휘함으로 개조되어 NECPA 임무에 맞춰져 노샘프턴과 교대로 임무를 맡게 됐다. 어떤 지휘함도 워싱턴DC에 가까운 버지니아 노퍽을 거점으로 하고 있으며 유사시 대통령이나 정부 고관이 미 해병대 헬기로 백악관을 탈출, 노퍽에 이송하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노샘프턴의 경우 배 중앙에 거대한 안테나가 고급 통신 설비를 볼 수 있다. 갑판 위에 거대한 안테나 몇 개가 있는 구조인 것. 통신 시설도 당시에는 고성능이며 지상에 있는 대규모 통신국과 같은 수준 메시지 처리 능력을 제공했다. 또 핵공격으로 오염된 환경에서 운용도 고려하고 있으며 승무원을 낙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에어 쉐터를 갖췄고 갑판을 소금물에 씻는 시설도 있었다.

라이트는 NECPA 임무에 특화해 개조했으며 통신 전문가 200명을 위해 마련한 작업 공간과 숙박 기능, 운영 센터, 군 지휘 계통별로 분류한 전화 12대를 갖춘 대통령 전용 개인실 등이 있었다. 또 육상 통신 시설이 파괴되거나 통신 능력이 손실된 경우 라이트는 세계 첫 원격 조작형 헬리콥터 QH-43을 갖춰 QH-43에 탑재한 초저주파 안테나로 통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NECPA 운용 원칙은 노샘프턴과 라이트 중 한 척을 영구적으로 해상에 배치하고 2주마다 교체하는 것이었다. 해상에 배치된 지휘함은 보통 미국 동부 해안을 순찰하고 있었지만 린든 존슨 대통령은 우루과이와 엘살바도르를 방문했을 때 이 지휘함에서 밤을 보냈다. 또 존F케네디 대통령도 연습할 때 지휘함에서 숙식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에는 핵전쟁이 발생했을 때 미 지도부를 후퇴시키는 것 외에 옵션으로 수송기 C-135를 개조한 EC-135J 나이트워치도 있었다. 나이트워치는 대통령이나 정부 고관을 싣고 비행하고 공중 급유 장시간 비행을 계속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항공기 나이트워치에서 지휘를 계속하는 건 기껏해야 며칠이 한계이며 승무원은 이륙 48시간 이후 음식과 물이 부족해진다. 이에 따라 노샘프턴과 라이트 등 지휘함은 높은 수준 연속성을 제공하고 해상에서 몇 주 동안 지휘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 노샘프턴도 라이트도 무장은 적었지만 적국 해군을 감지하는 지원 시스템을 구비하고 있으며 호위로 잠수함이 붙는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1960년대 소련 첩보위성이 등장하면서 움직임이 늦어 위성으로 쉽게 행방을 추적 가능하게 되면서 NECPA 지휘함은 더 이상 비상 상황에서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없었다. 미 해군은 1970년대 NECPA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1977년 노샘프턴, 1980년 라이트를 매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보잉이 특수 제작한 VC-25 에어포스원이 NECPA 이념을 잇고 있다. VC-25는 고성능 방어 장비와 거대한 통신 장비를 갖춰 하늘 위 백악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용환 기자

대기업을 다니다 기술에 눈을 떠 글쟁이로 전향한 빵덕후. 새로운 기술과 스타트업을 만나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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