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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수학 교과서는 왜 어려웠을까

러시아에선 컴퓨터 과학이나 수학, 물리 같은 교육에 힘을 쏟는다. 실제로 최고 수준 해커 중에는 러시아 출신이 많기도 하다. 수학이나 물리 교과서의 경우 구 소련 시절부터 난해한 수준으로 유명했다. 왜 소련 교과서는 다른 국가보다 어려웠을까.

1992년 러시아 프로트비노(Protvino)에 머물던 엔지니어 스콧 밀러는 20세기 후반 러시아에서 진짜 컴퓨터에 액세스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프로트비노는 과학자와 엔지니어 2만명 가량이 사는 과학 도시로 서점에는 모든 종류 수학과 과학 분야 서적이 쌓여 있었다. 내용이 충실한 건 물론 페이지 뒷면이 비쳐 볼 수 있을 만큼 얇은 종이로 된 책도 많고 가격도 저렴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의 물질적 자원이 풍부함과 소련의 창의력과 사고력이 대비되어 감동했다면서 소련에선 컴퓨터 등 장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학생과 과학자는 기자재 부족을 머리로 보완하지 않으면 안 됐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프로트비노에선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나 유럽입자물리연구소 CERN 같은 최신 설비를 도입하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장치를 오랫동안 사용하려는 rudgidd이 강했다. 90년대 그가 만난 러시아 일선 엔지니어는 자작한 인텔 8088 모조품이나 수입품 IBM PC XT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연구팀이 문제 자체에 대해 생각하면서 문제의 본질과 다른 연구 분야와의 관련성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고 문제를 깊이 이해해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는 계산 시간 단축으로 이어졌다. 또 부족한 시설이 구 소련 시대 연구자에게 학문을 추구하는 자세에서 어려운 교과서로 이어지게 됐다고 추측했다.

대학 시절 러시아와 미국인 교수에게 미적분을 배운 한 학생은 교수법 차이에서도 러시아 수학의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미국인 교수는 더 좋은 수학 교과를 만들기 위해 신입생이 어떻게 수학을 배울 것인지에 대해 흥미를 갖는다. 교수는 더 많은 학생이 수학을 마스터할 수 있게 신입생 이해도를 조사해 미적분학이 어떻게 어려운지 연구한다. 강의도 즐겁고 수학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반면 러시아 교수의 미적분학 수업은 우수한 학생만 살아남을 걸 상정한 수업이라고 한다. 짧은 설명과 어려운 구문, 초보적인 질문에는 교수가 비판적으로 답변하는 등 수학 자체와 관계가 없는 상황은 잘라냈다. 교육 정책 차이가 교과서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련과 미국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목적이 달랐다는 게 교과서 난이도에 차이로 이어졌다는 의견이 이렇게 거론된다. 소련 사회주의 하에선 기술 분야 직업 학문이 우대됐고 기술직에는 필수적인 학문이었던 수학과 물리학이 중시됐다.

미국 교사는 가장 학습 능력이 낮은 학생을 중심으로 하지만 소련은 반대로 가장 학습 능력이 높은 학생을 교사가 지원한다는 것이다. 또 미국 교과서는 미래 엔지니어를 위한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지식을 갖게 할 목적으로 만들지만 러시아 교과서는 미래 기술자가 될 학생을 위해 제작한다는 차이도 있다.

소련 영향 하에 있던 시대 루마니아에서 실제로 수학 교육을 받은 한 남성은 당시 루마니아 교육이 소련 교육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소련에서 교과서를 만든 저명한 학자가 참여하거나 감수를 했다. 또 소련은 물리학에서 란당우 물리 시리즈(Course of Theoretical Physics)가 교과서로 이용됐었다. 이 과정은 정말 소련 대학에서 표준 교과서가 맞는지 여부를 의심할 만한 수준의 난해한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는 평균적인 미국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의 수학 기초 능력은 자신이 배운 시대의 평균적인 루마니아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보다 훨씬 낮다고 단언한다. 기본적인 수학 능력은 몇 분수와 소수의 취급, 일차 방정식 해법, 이차 방정식 해법, 다항식과 합리적 함수 등 기본적인 걸 의미하지만 이런 기술은 미국 고등학교에선 중시되지 않는다는 것.

또 러시아 교과서 수준이 높은 게 아니라 소련 이외 국가에서 사용되는 교과서 수준이 너무 낮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 같은 국가에선 고등학교와 대학에 교육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학생을 그만두게 할 수 없어 교육 수준이 쉽다고 말한다. 반면 소련 교육은 무료이며 우수 학생은 장학금을 받고 징병 제도를 피하거나 연기할 수 있는 제도도 있었다. 따라서 학생간 학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우열차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교재도 어려워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소련이 원자폭탄과 로켓, 레이더 등 군사 개발 수요가 높고 개발에 종사하는 수학자와 물리학자는 우대받았다. 이를 꿈꾸는 마음을 이용해 수학자나 물리학자 지망생을 늘리고 우수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 교재로 인한 실력차를 명확하게 해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용환 기자

대기업을 다니다 기술에 눈을 떠 글쟁이로 전향한 빵덕후. 새로운 기술과 스타트업을 만나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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