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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악의 전염병, 1918년 독감에 관한 오해

1918년 유행 당시 전 세계 인구 4분의 1이 감염된 것으로 알려진 1918년 독감 일명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2000만 명에서 4000만 명까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전염병에 오해가 많기도 하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 중 하나라는 1918년 독감에서 배울 수 있는 10가지 오해가 정리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첫 번째는 스페인 감기는 스페인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1918년 인플루엔자는 제1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유럽 내 군인에서 처음 증례가 보고됐다. 하지만 전쟁을 하던 국가는 적에게 약점을 알리지 않으려 정보를 숨겼다. 따라서 질병은 대륙을 퍼져 중립국이던 스페인에 도착해서야 처음 존재가 보고됐고 이름이 붙었다. 실제로 1918년 인플루엔자 기원은 현대에서도 논의가 분분하다., 다른 유럽이나 동아시아, 미국 캔자스 같은 지역까지 잠재적으론 가능하다. 이런 배경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병원체에 대해 지명과 바이러스를 연결하는 호칭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오해는 슈퍼 방이러스에 의해 전염병이 일어났다는 것. 1918년 독감은 급속도로 확산되어 첫 6개월간 무려 2,500만 명이 사망했다. 한편 최근 연구에선 1918년 독감 바이러스는 다른 해 유행한 독감 바이러스보다 치사율이 높았지만 근본적으론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망률이 올라간 건 전쟁터에서 나쁜 환경, 도시 혼잡, 전쟁에 따른 영양실조와 위생 행동이라는 요소이며 독감에 의해 약해진 폐 세균성이 폐렴이 된 게 사인으로 상당수를 차지할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세 번째는 첫 유행이 가장 치명적이었다는 것. 1918년 독감은 연초 1파, 1918년 가을 무렵부터 2파, 1919년 봄부터 가을에 걸쳐 3파가 발생했지만 1파 치사율은 비교적 낮았다. 1918년 10월부터 12월까지 덮친 2파가 가장 치사율이 높ᄋᆞᆻ고 3파는 1파 이상이었지만 2파보다는 낮은 치사율을 보였다고 한다.

2파가 덮칠 당시 경증 환자는 집에 머물렀다. 중증 환자는 병원이나 군영 혼잡한 장소에 모였다. 이로 인해 치명적 형태로 바이러스가 퍼졌다고 한다.

다음은 바이러스는 감염자 대부분을 죽였다는 것. 많은 사람을 덮친 1918년 독감이지만 걸린 사람이 거의 모두 사망하는 것 같은 질병은 아니었다. 감염자가 속한 그룹에 따라 치사율이 달라 아메리칸 인디언은 큰 영향을 받았다. 이는 과거 인플루엔자에 노출된 적이 없던 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에 따라선 지금까지 존재하던 아메리칸 원주민 공동체 자체가 소멸해 버린 경우도 존재한다고 한다.

다음은 당시 치료법은 질병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 1918년 특정 항바이러스 요법은 존재하지 않았고 현대처럼 의료는 질병의 치료가 아닌 환자의 지원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연구자 중에선 1918년 독감 사망자 중에는 아스피린 중독이 사망률과 중증도에 영향을 줬다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당시 의료 당국은 독감에 대해 1일 30g 아스피린 투여를 권장했다. 현대에선 안전한 복용량으로 1일 최대 4g을 규정하는 만큼 대량 아스피린 투여가 죽음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스피린 투여가 이뤄지지 않은 지역에서도 치사율이 높아 이 같은 논의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다음은 뉴스로 대대적으로 보도됐다는 것. 1918년 인플루엔자가 유행했을 당시 각국 당국은 병사의 사기가 떨어지거나 국가 전체에서 패닉이 발생하는 걸 피하기 위해 전염병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당국의 경시로 보도가 많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유행성 전성기에는 당국도 행동에 옮기고 많은 도시에서 검염이 이뤄지고 때론 경찰과 소방관 행동을 제한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음은 유행성이 제1차세계대전 결과를 바꿨다는 것. 이 같은 유행성은 연합국과 동맹국 모두에게 같은 영향을 줬기 때문에 유행성 전염병에 의해 전쟁 결과가 좌우됐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전장이라는 환경이 바이러스에게 병원성을 강화할 이상적인 장소가 된 건 분명하다.

다음은 광범위한 예방 접종에 의해 전염병이 융합됐다는 것. 1918년 독감 예방 접종은 1918년에 실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염병 수렴은 예방 접종에 의한 게 아니다. 몇 년간 군에 소속되던 병사는 신병보다 사망률이 낮았다는 게 밝혀지고 있으며 과거 인플루엔자 노출이 몸에 남아 있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빠르게 진화하는 바이러스가 치사율이 낮은 쪽으로 변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자연 도태 모델을 볼 때 바이러스가 치명성을 낮췄다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바이러스 유전자 배열이 결정된 게 없다는 것. 2005년 연구자들은 1918년 독감의 염기 서열을 해독했다. 이 연구에서 채취한 샘플은 알래스카 영구동토에 묻힌 사자에서 회수한 것이다. 이후 191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자를 리버스제네틱스법으로 인공 합성해 원숭이에 감염시킨 결과 유행 기간 중 관찰된 증상을 나타내는 걸 알 수 있었다. 원숭이는 면역이 과잉 반응하는 사이토카인 폭풍에 의해 사망해 1918년 당시에도 사이토카인 폭풍이 젊은 성인 사망률을 높였다고 여겨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오늘날 세계는 1918년만큼 취약한 편이라는 것. 감염의 심각한 유행은 수십 년마다 발생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대 과학자들은 질병으로 죽어가는 환자를 격리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1918년 당시보다 더 이해하고 있다. 또 세균의 2차 감염 방지를 위한 항생제는 당시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대 의사는 처방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와 손 씻기의 중요성도 널리 알려져 있다. 백신과 항바이러스제 개발도 기대할 수 있다. 문명이 발달해도 바이러스는 여전히 인간 생활을 갑자기 위협할 수 있지만 인류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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