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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 PC에는 왜 열쇠 구멍이 존재할까?

1990년대 중반까지 나온 PC를 보면 케이스 앞쪽에 열쇠 구멍이 붙은 모델이 많았다. 마치 자동차처럼 열쇠를 끼우고 시동을 걸 필요도 없는데 굳이 왜 열쇠 구멍을 달았을까.

이 열쇠 구멍은 키 잠근 기능으로 주로 1984∼1994년 사이 등장한 PC에 자주 탑재했던 기능이다. 왜 이런 기능이 등장했다가 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키 잠금은 키보드 입력을 잠그거나 PC 케이스를 열지 않도록 하기 위한 2가지 목적을 위해 쓰였다고 한다.

PC에선 키 잠금을 설정하면 키보드 입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덕분에 사용자는 PC 앞에 떠나 있는 동안 누군가가 마음대로 조작하는 걸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것. 또 PC 케이스를 누군가 해체해 하드디스크를 빼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점을 방지한다.

이런 유형 잠금장치가 주류가 된 계기는 1984년 IBM이 출시한 PC/AT 모델 5170 등장 이후다. 이 기종은 PC/AT 호환 기종이라는 말이 태어날 만큼 수많은 추종 모델을 불러왔고 사실상 표준이 된 PC다.

이런 키 잠금에 대해 1984년 다룬 PC잡지에 따르면 기업 중역이 잠을 뻗고 자도 될 혁신적 시스템이라면서 복제할 수 없는 키가 소유자 외에 다른 접근을 모두 차단해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중요한 포인트였다. 당시 IBM PC나 IBM PC/XT는 누구나 쉽게 PC 내부에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암호나 인증 시스템도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에 제3자 접근을 막을 수단이 없었다. 비밀을 지켜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난감한 일이다. IBM이 주목한 건 키 제조사 시카고락(Chicago Lock)이 특허를 갖고 있던 튜브라는 키다. 이 견고한 구조와 콤팩트함 덕에 자동판매기나 경보 시스템 등에 이용되고 있었다.

당시 PC가 자동판매기보다 견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에 편온을 가져다주는 최소한의 보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도 충분한 활약을 보였다. 당시 인기는 IBM이 사용자에게 키 잠금 옵션 추가 제품을 출시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키 잠금 시대가 열렸지만 이 시대의 등장은 잠긴 채 열쇠를 잃어버리면 문제가 되는 고민의 시작을 얘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키 잠금이 쓸모 없어진 지금도 빈티지 PC 시장에선 열쇠 없는 중고 PC가 잔뜩 널려 있다.

어떤 의미에선 이 시대를 상징하는 실리콘그래픽스의 SGI 인디고2(SGI Indigo2)는 선단에 구멍이 뚫린 금속 막대를 PC에 넣고 반대편에 자물쇠를 걸어 사용했다. 그 밖에 플로디디스크 드라이브 전용 키도 있었다.

키 잠금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잠금 장치를 단 PC는 일부에 있었다. 서버나 워크스테이션, 마니아용 PC, 도둑 맞을 가능성이 있는 노트북 등 일부가 그렇다. 하지만 결국 바이오스 암호를 설정할 수 있게 되고 운영체제가 암호나 파일 암호화를 지원하면서 실제 키는 사라졌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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