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에 위치한 핀란드는 UN 세계행복지수 랭킹에서 7년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국민 행복도가 높은 국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스웨덴 룬드대학 연구자는 국민행복도를 산출하는 지표가 부와 권력을 지나치게 중시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성장 외에도 국민 행복도를 중시하는 정부가 늘어나면서 UN이 발표하는 세계행복지수 순위는 자국이 얼마나 행복한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이 세계행복지수 순위는 미국 여론조사회사인 갤럽이 수집한 행복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발표되는데 이 행복도 조사는 캔트릴 사다리 척도(Cantril Ladder Scale)라고 불리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질문에 근거하고 있다. 캔트릴 사다리 척도란 미국 여론연구가 앨버트 캔트릴이 고안한 삶의 만족도나 행복도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조사에서 캔트릴 사다리 척도를 사용할 경우 피실험자에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제시되고 행복도를 자가 보고한다. 최하단에서 최상단까지 0부터 10까지 번호가 매겨진 사다리를 상상해보라. 사다리 가장 높은 곳은 가능한 최고의 삶을 나타내고 가장 낮은 곳은 가능한 최악의 삶을 나타낸다며 현재 사다리 어느 단계에 서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이다.
캔트릴 사다리 척도에서 의문스러운 점은 가장 높은 단계가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다. 최상단은 사람마다 다른 대상을 가리킬 수 있어 어떤 이에게는 돈일 수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가족일 수 있다.
이에 연구팀은 영국 성인 1,600명을 대상으로 캔트릴 사다리 척도가 의미하는 바를 탐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피실험자는 5개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가장 좋은 상태가 무엇을 뜻하는지 답변했다. 첫째 캔트릴 사다리 그대로의 질문, 둘째 캔트릴 사다리에서 사다리(ladder)라는 비유를 제거하고 척도(scale)로 바꾼 질문, 셋째 캔트릴 사다리에서 사다리 비유와 가장 높은, 가장 낮은 같은 용어를 제거한 질문, 넷째 캔트릴 사다리에서 사다리와 상하 비유를 제거하고 가능한 최고의 삶을 가장 행복한 삶으로 대체한 질문, 5번째 캔트릴 사다리에서 사다리와 상하 비유를 제거하고 가능한 최고의 삶을 가장 조화로운 삶으로 대체한 질문이다.
실험 결과, 첫째 그룹에서는 피실험자가 권력, 부와 같은 것을 연상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사다리 비유가 제거된 2번과 3번 그룹에서는 부, 금전이라는 말 대신 경제적 안정과 같은 관점을 갖게 됐다.
더 나아가 행복이나 조화로운 삶에 초점을 맞춘 4번과 5번 그룹에선 다른 그룹보다 권력이나 부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대신 인간관계, 일과 생활의 균형, 정신건강 등 넓은 의미의 웰빙에 대해 고민하는 경향이 있었다.
연구팀은 또 피실험자에게 0에서 10 사이에서 어디에 있고 싶은지도 질문했다. 캔트릴이 만든 질문에서는 당연히 10을 원할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한 연구자가 없었다고 한다.
조사 결과, 어느 그룹에서도 과반수가 10을 선택하지 않았고, 피실험자가 가장 선호한 단계는 9였다. 또 캔트릴 사다리 그대로의 질문인 1번 그룹에서는 9가 아닌 8을 원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연구팀은 피실험자가 10이나 9보다 낮은 8을 선호한 이유로, 사다리 비유가 권력과 부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물론 이번 결과가 핀란드 국민이 불행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계행복지수 조사에 사용되는 캔트릴 사다리가 광의의 웰빙이나 행복이 아닌 권력과 부에 편중된 지표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는 연구자가 어떤 행복감을 측정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연구자가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며 따라서 연구자는 사람들에게 행복의 개념이 뭔지 물어봐야 한다고 밝혔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