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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 인터넷 도입하면 토론 질이 높아질까

인터넷에서는 매일 다양한 주제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는 익명 인터넷에서는 건설적인 토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인터넷에 실명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완전 익명, 특정 계정에 연결된 익명, 완전 실명 3단계에서 벌어진 토론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가장 건설적인 토론이 이루어진 건 완전 실명 환경이 아니었다.

인터넷에서의 익명성은 사회적, 법적 차별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종교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도 익명이라면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두려움 없이 발언할 수 있다.

하지만 익명성을 악용해 안전 지대에서 타인에게 악담이나 중상을 퍼붓는 일도 있어 인터넷 익명성이 언론 공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 또 익명이라면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마음대로 말할 수 있어 익명 공간에서는 시민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 요크대학 연구팀은 익명성이 토론 질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2013년 1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 4,500만 건을 분석했다.

이 기간 중 허핑턴포스트는 누구나 익명으로 댓글을 달 수 있는 상태 그러니까 완전 익명제에서 계정 등록 후 익명 댓글을 달 수 있는 상태인 등록 익명제로 전환했고 최종적으론 실명 SNS인 페이스북 계정으로 댓글을 다는 상태인 완전 실명제로 바뀌었다.

먼저 완전 익명제 상태에서는 관리자에 의해 차단된 사용자가 바로 이름을 바꿔 댓글을 달 수 있었다. 이에 허핑턴포스트는 페이스북 계정 인증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기사 댓글은 익명으로 작성할 수 있지만 플랫폼 측에서는 개별 계정을 식별할 수 있게 됐고 공격적 행위로 차단되면 새 계정을 만들 수 없게 됐다.

결국 허핑턴포스트는 댓글 시스템 자체를 페이스북에 아웃소싱해 허핑턴포스트 사용자명이 페이스북 실명 계정으로 대체됐다. 다시 말해 이 세 단계에서 달린 댓글의 질을 비교해 완전 익명제와 등록 익명제, 완전 실명제 중 어떤 상태에서 높은 수준의 토론이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

분석 결과 욕설이나 불쾌한 말 사용은 완전 익명제에서 등록 익명제로 전환하면서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발견을 깨진 창문 이론(Broken Windows Theory)에 비유하며 환경을 깨끗이 하면 모든 사람의 행동이 개선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단어 길이,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단어, 잠정적 결론을 보여주는 단어 등 개별 댓글 특성을 분석해 댓글별 인지적 복잡성을 측정했다. 댓글의 인지적 복잡성은 해당 댓글이 어떤 맥락에서 작성됐는지는 특정할 수 없지만 토론의 질을 측정하는 데 뛰어난 지표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댓글의 인지적 복잡성 추이를 분석한 결과 가장 댓글 질이 높았던 건 등록 익명제 단계였으며 완전 익명제에서 전환한 뒤 토론의 질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등록 익명제에서 완전 실명제로 넘어가자 댓글 질이 저하됐다고 한다. 이 결과는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성을 배제하고 실명제로 가면 높은 수준 토론이 가능해진다는 견해와 배치된다.

등록 익명제에서 댓글 질이 가장 높아지는 메커니즘은 불분명하지만 연구팀은 한 가지 가능성은 고정된 필명 아래에서 사용자가 주로 동료 댓글 작성자를 청중으로 삼아 댓글을 단다는 것“이라며 ”그러면 다른 플랫폼에서도 시사되듯 그들은 포럼 내에서 자신의 평판을 신경 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실명 환경에서는 이런 역학 관계가 바뀔 수 있다. 허핑턴포스트 다른 독자뿐 아니라 페이스북 친구도 볼 수 있는 댓글을 쓸 때 발언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합리적으로 보인다는 것.

연구팀은 익명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자신의 페르소나에 투자하고 특정 포럼에서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실명이 아니더라도 개별 사용자가 한 계정에 묶여 있고 다른 댓글이나 행동과 연결되어 평판이 오르내릴 수 있다면 예의바른 건설적인 댓글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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