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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반도체 산업에서 뒤처진 이유

컴퓨터 등 전자기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반도체 생산에서 유럽이 다른 지역과의 경쟁에서 진 이유는 뭘까. 2019년 시점 전 세계 시장에서 반도체 설계와 제조, 조립을 유럽 기업이 맡는 건 드물다. 미국이나 중국, 대만, 우리나라나 같은 중심적 존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유럽 기업의 존재감은 없다.

20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반도체로 만들어진 트랜지스터 개발에선 미국에 이어 유럽도 참가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이 분야에서 선구자라고 할 만한 존재였다. 하지만 일본 등이 참여하면서 유럽에서 반도체 산업이 뒤처지고 기술 격차는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벌어진다.

1947년 미국 벨연구소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트랜지스터를 개발했지만 반년 뒤에는 파리에 있던 독일인 과학자 2명인 헤르베르트 마탈레와 하인리히 웰커가 증폭 작용을 하는 트랜지스터 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나중에 점접촉 트랜지스터(Point-contact transistor)라고 불리는 첫 번째 트랜지스터였다.

이들은 프랑스 전신국 유진 토머스에 자신의 발명품을 보여 특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의뢰했고 모터스는 1949년 5월 트랜지스터 발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당시 우세했던 진공관에 대한 트랜지스터 우위를 들며 사용법을 시연했다. 이 사업은 프랑스에서 극찬을 받았고 1951년과 1952년 미국과 프랑스에서 각각 특허 취득에 성공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원자력 개발에 주력하기로 결정하고 통신 사업은 민간 기업에 위탁됐다. 정부로부터의 자금이 통신이 아닌 원자력에 들어가면서 통신업계에서 트랜지스터 개발은 정체되어 버린다. 한편 미국에선 벨연구소가 트랜지스터 상세를 밝히는 공개 심포지엄을 열어 제작과 조성에 대한 지식을 누구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환경 차이가 미국 연구소에 의한 유럽 각국 연구자 인출로 이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더구나 프랑스는 1957년부터 1958년에 걸쳐 알제리 전쟁에서 연패하고 긴축 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업계 90%가 정부에 의존하던 트랜지스터 산업은 이 정책에 의해 주도권을 크게 잃게 됐다. 유럽이 정체되어 있는 동안 일본은 반도체 산업을 크게 주도하게 된다. 일본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TV 개발을 진행해 1950년부터 1960년에 걸쳐 반도체 제조 수가 급격하게 상승했고 기업 인수 등을 통해 반도체 관련 정보를 집약하는 등 크게 성장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상황 개선을 위해 1982년 프랑스는 5개년 계획을 발표해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분야 발전을 도모하며 반도체 연구개발에 상당 자금을 투자한다. 목표는 해외 산업이 지배하던 반도체 점유율을 중소기업을 통해 되찾는 데 있었다. 서독에선 1984년 정부가 대규모 반도체 R&D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하지만 유럽 각국은 도산 등이 이어지고 미국 기업으로부터 합병을 당하면서 유럽 반도체 산업은 쇠퇴했고 동시기 참가한 우리나라 등 아시아 기업에 밀리게 된다. 2021년에는 유럽연합이 전략적 자치 구축 계획을 발표하며 하이엔드 칩 생산 점유율을 확대하고 반도체에 대한 유럽 점유울을 2배로 늘리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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