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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없는 교통 시스템 나올까

교통 정체 현상은 모스크바나 베이징, 카이로나 서울 등 대도시에선 늘 골칫거리다. 교외에서 출근하려면 2시간 이상 걸리거나 하루 출퇴근에 쏟는 시간만 3∼4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만일 출퇴근 시간을 하루 3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면 주5일 직장 기준으로 한 달 22시간, 35년이면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출퇴근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상당수 스타트업이 교통 시스템 개선을 목표로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관련 기술도 개발 중인데 이 가운데 하나가 바로 V2V(Vehicle-to-Vehicle)다.

V2V는 차량끼리 무선으로 통신을 진행해 신호등 같은 교통 신호 없이 교통 시스템 효율화를 기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차량에 탑재한 통신 기능을 통해 원활하고 안전하게 차량이 주행할 수 있게 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카네기멜론대학 오잔 통구즈(Ozan K. Tonguz) 교수 연구팀은 VTL(Virtual Traffic Lights) 연구를 진행해 2017년부터는 실제 차량으로 대학 인근 도로에서 실험을 진행 중이다. 2018년 7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VTL 공식 데모를 진행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V2V 기술 개발을 통해서 신호기로 교통을 통제하는 시대가 끝나고 차량이 교차로를 지나가려고 신호등을 가만히 기다리는 시대가 끝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신호등은 20세기 초 도입 이후 오랫동안 시스템 자체가 진화한 적이 없다. 기본적으론 타이머를 이용해 청신호와 적신호를 제어한다. 아무도 없는 교차로라도 적신호가 들어오면 멈춰야 한다. 아침저녁 출퇴근 피크타임에 따라 미묘하게 신호 간격을 바꿀 수는 있지만 결국 신호 전환 시간을 조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V2V를 이용한 교통 시스템에선 신호등은 필요하지 않다. 이 시스템은 같은 방향에서 어떤 교차로에 접근하는 자동차 여러 대가 있다면 서로 통신해 이 중 한 차량을 리더로 정의한다. 이 리더 차량이 교차로에 접근하면 리더와 함께 교차로에 접근하는 그룹이 청신호로 그대로 교차로를 통과할 것인지 혹은 적신호로 정지할 것인지 결정한다.

만일 교차로를 가로지르는 상황에 다른 차량 행렬이 온다면 V2V 통신을 통해 확인해 리더는 다른 그룹 차량에 청신호를 발신한다. 그런 다음 그룹 전체가 교차로를 통과한다. 반대로 교차로에서 다른 그룹과 마주칠 것으로 예측되는 선진입 그룹이 있다면 리더는 자신의 그룹에 적신호를 발신해 교차로 진입 전 차량이 모두 정차하도록 한다.

이런 알고리즘에서 리너는 항상 같은 차량이 맡는 게 아니라 타이밍과 상황에 따라 돌아가면서 계속 교대를 하게 된다. 이 시스템에서 교차로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건 신호등이 아니라 다른 그룹차량과의 접근 시간이다. 따라서 기존처럼 다른 차량이 없는 교차로에서 적신호에 걸려 계속 기다릴 필요가 없다. 멈출 필요가 없다면 항상 계속 주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VTL 알고리즘은 전방 차량과의 거리나 교차로 중심과의 거리, 차량 속도와 주변 차량 대수 등 다양한 매개 변수에서 리더 차량을 선출한다. 교차로를 가로지르는 차량 행렬 거리가 각각 교차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1대가 조금 감속해 엇갈리는 것도 감지하며 교차로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게 한다. 또 우회전하려는 차량이 교차로에 가장 가깝다면 우회전이 우선 적용, 교차로 중앙 부근에서 가만히 우회전 타이밍을 가늠해 기다릴 필요도 없다.

여기에서 차량끼리 통신을 할 때 VTL 시스템을 이용하는 건 DSRC라는 무선 통신 방식을 쓴다. DSRC는 전자요금 징수나 주행 제어 등 다양한 용도를 감안해 개발된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DSRC를 탑재한 차량은 많지 않다.

하지만 DSRC나 5G 같은 차세대 통신 규격을 이용한 VTL 시스템은 10분의 1초마다 차량 주행 중 정보를 발신한다. 차량 위도와 경도 진행 방향을 데이터로 전송하고 차량에 탑재한 프로세서가 주위 차량을 포함한 위치 데이터를 구글맵 같은 디지털 지도 서비스에 쌓고 다른 차량이나 교차로와의 거리를 계산한다. 이를 통해 리더 그룹이 청신호 혹은 적신호인지 결정을 내려 운전자에게 정보를 전달해준다.

VTL은 중앙집권형이 아니라 개별 차량이 서로 연계해 정보를 송수신하는 분산형 시스템이다. 곤충과 물고기는 진행 방향을 바꾸기 위해 옆 개체 동작에서 정보를 받아 자신의 진행 방향을 바꾸는 것 같다고 말한다. V2V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교통 시스템 도입은 20세기 전반부터 1세기 가량 변하지 않던 교통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연구팀은 미국 피츠버그와 포르투갈 프르투 등 2개 도시를 대상으로 가상 도시 이동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VRL 시스템 효과를 추산했다. 그 결과 두 도시는 러시아워에선 포르투의 경우 평균 출근 시간을 35분에서 21분 20초로, 피츠버그에선 30분 40초에서 18분 20초로 단축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평균 30% 가량 출근 시간을 줄인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선 60%까지도 출근 시간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VTL 시스템이 출근 시간을 크게 줄인 이유는 적신호에서 무의미하게 멈출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과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 뿐 아니라 모든 교차로에서 VTL 시스템을 도입해 도로 표지판이 나오면 멈출 필요가 없어졌다는 이유가 크다. 또 사고 대부분이 발생하는 교차로에서 문제를 해결해 사고 건수는 70%나 줄어든다는 결과도 나왔다. 그 밖에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DSRC가 곧 널리 보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DSRC 탑재 차량이 적은 탓에 VTL 시스템을 빨리 도입하기는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VTL 시스템이 실제 도움을 주는 게 먼 얘기만은 아니다. DSRC를 전체 차량에 탑재하지 않으면 VTL 시스템의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건 맞다. 하지만 기존 교차로에 VTL 시스템을 통합해 일부 DSRC 차량과 통신해 부분적으로 VTL 시스템을 이용한 신호 변환은 할 수 있다. 이 모델을 이용하면 시뮬레이션 결과로는 현행 제어 시스템보다 23% 가량 뛰어난 교통 효율을 달성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VTL 시스템 실현에 따른 문제점은 보행자와 자전거의 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이 항상 DSRC 통신 장비를 휴대할 여유가 없는 만큼 보행자가 버튼을 누르면 모든 방향 차량이 멈추는 단기적 해결책을 고민해볼 수 있다. 다만 미래에는 차량에 탑재한 카메라로 보행자를 감지해 자동으로 길을 양보하는 시스템 개발 연구가 필요할 수 있다.

최근 개발 중인 자율주행 차량과 결합하면 VTL 시스템이 상당히 잘 작동할 수 있다. 자율주행 차량은 혼잡한 교차로에 진입하는 복잡한 상황에선 약점이 있지만 VTL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혼잡한 교차로라는 상황을 해소할 수 있다. 자율주행 시스템과 VTL 시스템은 상당히 친화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 지도나 주위 차량 위치 정보와 함께 작동하는 VTL 시스템은 자율주행 시스템에선 어려운 시계 불량 상태에서의 운전을 지원해줄 수 있다. 또 인간 운전자가 아닌 자율주행 시스템에 VTL 시스템의 결정을 알려 이에 따라 자율주행이 이뤄지게 하면 그만큼 실수를 방지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선 VTL 시스템은 수송이나 교통 문제에서 큰 전환점이 될 가능성을 줄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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