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1918년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펼쳐진 제1차세계대전은 1,600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냈다. 또 1918년부터 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도 수천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이 같은 배경에는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이상 기상 현상이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제1차세계대전의 비참함을 호소하는 문장으로 반복되는 건 서부전선에서 펼쳐진 참호전이다. 참호에 틀어박힌 군인은 강우에 의한 웅덩이와 진흙에 장시간 잇으면서 기온이 떨어지면 체온 저하와 동상 위험이 있었다.
트렌치 전쟁 참상에 대해선 널리 알려져 있는 반면 당시 유럽을 덮친 기상 조건에 대해선 지금까지 깊이 연구되지는 않았다.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알프스 산맥에서 채취한 빙하 코어 데이터를 이용해 제1차세계대전 중 유럽 기상 조건을 재구성했다.
연구팀이 빙하 코어에 갇힌 해수 유래 염분 등을 분석한 결과 1915년과 16년, 18년 겨울에는 대서양 공기 상당량이 유럽에 흘러들어간 걸 발견했다. 예년 볼 수 없던 이상한 공기 흐름에 따라 당시 유럽에선 강우량이 많아 추위가 높아졌다.
연구팀은 대기 순환이 변화한 것으로 유럽 전역에서 6년간 예년보다 훨씬 많은 비가 와 더 추운 기후가 됐다며 이 특별한 기후는 100년에 한 번 있는 비정상적 상황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상 기후에 의한 강우량 증가와 추위 강세가 제1차세계대전 당시 사망자 수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다.
연구팀은 또 당시 기상 이변이 스페인 독감 유행을 일으킨 요인 중 하나였을 가능성도 지적하고 있다. 스페인 독감은 H1N1형 인플루엔자 통칭으로 바이러스 주요 숙주인 청둥오리는 기후 변화에 민감한 조류다.
청둥오리 이동 패턴은 기후 이변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1918년 청둥오리가 예년처럼 러시아 방향으로 향하지 않고 서유럽에 멈춰 계속 있었다고 지적했다. 전시 하에선 비위생적인 환경에 놓인 군인과 민간인이 청둥오리와 접촉하기 쉬운 상황을 초래한 결과 청둥오리의 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 치사성이 강한 인플루엔자가 유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대기 이상은 이동 가능한 물과 주변 동물에 영향을 주며 동물은 이동 중 자신이 가진 질병을 전파하지만 동물 이동은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고 밝혔다. 한 전문가는 격렬한 강우가 바이러스 확산을 가속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의견이 흥미롭다며 이번 연구는 감염과 환경간 상호 작용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다루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