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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판 실리콘밸리, 해외 탈출 러시 이유는?

동유럽에 위치한 벨라루스는 1991년 구 소련에서 독립한 예전 소비에트연방 국가. 동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IT 강국이기도 하다. 이런 벨라루스 IT 노동자가 26년간 권좌에 머물면서 유럽 최후의 독재자라고 불리는 알렉산더 루카센코 대통령의 움직임을 둘러싸고 국외 탈출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벨라루스 경제는 몇 년간 구 소련에서 계승된 국영농장과 중공업에 지탱되어 왔다. 그런데 2005년 IT 산업을 대상으로 한 HTP(Belarus High Technologies Park)라는 제도를 만든 계기로 벨라루스에서 IT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HTP에 등록된 기업은 사무실 위치에 관계없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해당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 개인도 소득세 경감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또 벨라루스 수도인 민스크 동쪽 50헥타르에 첨단 도시를 건설하고 등록 기업과 직원은 고급 인프라와 쾌적한 거주 환경을 손에 넣을 수 있다.

2020년 HTP 특구 내 IT 기업은 700여 개에 이른다. 여기에서 일하는 직원 수는 6만 명에 이르고 해외 거래로 연간 20억 달러를 벌고 있다. 노동자 대부분은 비교적 나이가 젊지만 벨라루스 전체 평균 월급이 500달러인데 비해 이곳 노동자 평균 월급은 2,000달러로 무려 4배에 달한다. 벨라루스 전 경제장관은 이곳 정보 산업은 국내 초생산 GDP 중 6.5%에 해당해 2019년 경제 성장 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벨라루스에서 IT 산업이 발달한 이유는 벨라루스 인건비가 유럽에서 가장 저렴하기 때문에 전 세계 각국에서 업무 아웃소싱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IT 업계 하청만으로 발전해 온 게 아니라 워게이밍(Wargaming), 이팸시스템즈(EPAM Systems)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IT 관련 기업도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벨라루스 IT 산업이 위협을 받고 있으며 IT 노동자가 국외로 탈출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벨라루스 IT 노동자가 국외 탈출을 향하게 하는 원인이 된 건 26년간 벨라루스 최고 권력자로 군림해온 루카센코 대통령의 재선이다.

지난 8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루카센코 대통령은 6회째를 맞은 당선을 선언했다. 하지만 중립적인 선거감시단 입회가 없었고 부정선거 우려가 부각되면서 투표가 종료된 직후부터 투개표 부정을 항의하고 루카센코 대통령 사임을 요구하는 시민과 치안유지부대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다.

경찰은 선거 3일 뒤 인터넷을 차단하고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IT 기업 사무실도 치안유지부대 공격 대상이 되고 러시아 검색엔진인 얀덱스(Yandex), 문서 자동화 도구 제공사인 판다독(PandaDoc) 사무실 등도 망쳐버렸다. 또 투자기업 엔젤밴드(Angels Band) 공동 설립자 등 수많은 사람이 경찰에 체포되어 버렸다. 이런 이유로 대통령이 권력을 잡는다면 IT 부서는 묻혀버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루카센코 대통령은 혼란 확대에 따라 러시아에 돟움을 요청하고 있으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필요에 따라 치안유지부대를 개입시킬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통제 불가 상황이 될 때까지는 부대를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며 곧바로 치안부대를 개입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도 시민 항의 시위는 계속되어 있어 대선 1개월 이후에도 치안부대를 통한 탄압이 이뤄지고 있다. IT산업 노동자도 시위에 적극적이다. 이팸시스템즈와 워게이밍 설립자 등 직원 2만여 명을 포함한 기술 기업 임원은 적어도 5명이 사망하고 7,000여 명이 구금된 탄압에 항의하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벨라루스에서 가장 거대한 IT 기업인 이팸시스템즈의 경우 일부 직원을 국외로 이전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으며 러시아에 본사를 둔 얀덱스는 직원 일부를 이미 대피시켰다고 한다. 또 생리일 예측 앱 플로(Flo)는 직원 200명을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영국에 옮기는 걸 검토중이라고 한다.

미키타 미카도(Mikita Mikado. 사진 위) 판다독 CEO는 아무도 유럽 한 가운데에 위치한 북한에 살기를 원하지는 않는다며 상황이 악화되면 벨라루스에 있는 프로그래머 250명을 이전시킬 예정이라고 말한다. IT 엔지니어에게 국경은 없으며 이들은 전 세계 어디서나 일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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