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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치매 환자…죽음 직전에 기억력 돌아오는 이유는?

치매는 점점 환자로부터 과거 기억과 의사소통 능력을 앗아가 결국 중요했던 것과 가족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때로는 긴 작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19세기부터 일부 치매 환자가 갑자기 의식을 되찾아 가족이나 친구와 예전처럼 대화를 나누거나 잃어버린 과거를 회상하거나 식사를 하는 사례가 보고됐다.

호주 모나시 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치매 상태에서 돌아온 사람 43%는 24시간 이내에, 84%는 일주일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현상은 환자 가족이나 의료시설 직원에게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오랫동안 과학적 연구 대상이 되지 않았다. 연구자가 이 현상에 종말기 명령(terminal lucidity)이라는 용어를 부여한 건 2009년이었다.

보통 죽음 직전에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진 종말기 명령이지만 모든 경우가 죽음 직전에 나타나는 건 아니다. 2024년 연구에 따르면 진행된 치매 환자 중 많은 수가 사망 6개월 이상 전부터 머리가 맑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또 인지나 기억 장애가 있던 사람이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는 경우는 수막염, 조현병, 뇌종양, 뇌 외상 환자 등에서도 보고되고 있다. 죽음 직전이 아닌 시기에 정신이 맑아지는 현상은 역설적 명료성(paradoxical lucidity)라고도 불린다. 이는 치매 등 신경 변성 질환의 예상 경과와 반대되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지만 안타깝게도 역설적 명료성은 일시적인 것이며 신경 변성 질환 진행이 멈추거나 역전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최근 종말기 명령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메커니즘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종말기 명령이 사랑하는 이들 앞에서 발생했다는 증례 보고가 많은 편이며 음악이 두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대부분 종말기 명령에는 분명한 촉발 요인이 없다고 한다. 2023년 연구에선 죽음 전 뇌 활동 변화가 종말기 명령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고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잃어버린 능력이 갑자기 회복되는 이유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또 역설적 명료성이나 종말기 명령 자체를 연구하기가 어렵다는 과제도 있다. 진행된 치매 환자 모두가 종말기 명령을 경험하는 건 아니고 촉발 요인도 불분명해 언제 정신이 맑아질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말기 명령은 그 순간을 지켜본 이들에게는 환자와 소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어 그 시간을 활용해 연구자가 환자에게 인터뷰를 하거나 사후에 유족에게 종말기 명령 에피소드를 묻는 것은 비윤리적일 수 있다.

실제로 진행된 치매 환자 종말기 명령을 본 반응은 다양하다. 평화롭고 따뜻한 시간이었다고 느끼는 이도 있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큰 충격을 받기도 하며 혹시 회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연명 조치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연구자는 종말기 명령 현상을 알고 있으면 사랑하는 이들은 그게 죽음의 과정 일부라는 걸 이해하고 치매 환자가 회복되지 않을 걸 인정하며 정신이 맑아진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며 그 자리에 있던 이들에게 종말기 명령은 치매가 진행되어 긴 작별이 시작되기 전 환자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마지막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원영 기자

컴퓨터 전문 월간지인 편집장을 지내고 가격비교쇼핑몰 다나와를 거치며 인터넷 비즈니스 기획 관련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디지털 IT에 아날로그 감성을 접목해 수작업으로 마우스 패드를 제작 · 판매하는 상상공작소(www.glasspad.co.kr)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IT와 기술의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마음으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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