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레시피

화면 없는 미래형 컴퓨팅을…휴멘스 AI핀

지난 10년간 기술 기업은 계속 스마트폰과 함께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뭐가 스마트폰을 대체할 웨어러블 기기일까 개발을 목표로 삼아왔다. 이 과정에서 화면을 말 그대로 눈앞에 항상 붙이는 구글글라스 같은 장치가 태어나거나 더 디스토피아스럽게 칩을 뇌에 묻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미래 기술은 이런 식으로 항상 인간 눈앞 또는 뇌속에서 전체 화면 표시 같은 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화면 자체를 없애고 필요할 때만 놓치지 않고 보여주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기기 밖 세계에 집중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편리한 장치로 발표되는 건 휴메인(Humane)이 개발하는 AI핀(AI pin)이다. 휴메인은 애플 출신이 시작한 스타트업으로 오픈AI 샘 알트만 CEO나 마이크로소프트 등으로부터 자금 제공을 받아 몇 개월에 걸쳐 AI핀을 개발해왔다.

인간과 컴퓨팅 사이 관계를 혁신하는 걸 내세우는 AI핀은 11월 9일 정식 발표 예정. AI핀이란 쉽게 말해 옷에 클립으로 장착하는 작은 레이저 프로젝터다. 이 핀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연결하지 않아도 단독으로 전화 수발신을 할 수 있고 인터넷에 접속해 여러 질문에 답해주는 버추얼 어시스턴트 겸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화면은 따로 없고 대신 손바닥에 레이저를 투사해 정보를 표시한다.

AI핀은 퀄컴 스냅드래곤 칩을 탑재하고 오픈AI GPT-4에서 파생된 독자적인 대규모 언어 모델을 실행한다. 마이크에 카메라, 다양한 센서도 내장해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고 사용자 일상 속 질문에 답을 해준다. 세세한 사양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지난 10월에는 코페르니 브랜드쇼에 등장해 디자인을 선보인 바 있다. 스마트워치보다 조금 큰 정도 사각형으로 재킷이나 바지 허리춤에 붙일 수 있다.

AI핀을 만든 건 휴멘스 공동 창업자 2인(Imran Chaundhri, Bethany Bongiorno)은 전 애플 출신으로 부부다. 각각 제품 주요 기능 디렉팅을 위한 디자이너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을 맡아왔다. 이들은 함께 2017년 애플에서 퇴사해 다음해 휴멘스를 설립하고 AI핀 개발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들은 AI핀이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세계와 상호 작용한다며 사람과 같은 걸 듣고 같은 걸 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프라이버시를 우선하면서 안전하고 삶의 배경에 완전히 녹아든다는 것. 이런 경험을 휴멘스는 스크린리스, 원활함, 센싱이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컴퓨터에 대한 액세스를 유지하면서 주변 환경을 인식할 수 있다.

스마트폰은 편리하지만 너무 많이 사용한 탓에 스크린타임을 스스로 제한하기 위한 설정이나 앱이 있을 정도다. 따라서 휴멘스 목표 중 하나는 사용자 화면 시간을 완전히 없애거나 극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AI핀으로 할 수 있는 건 전화 만은 아니다. 질문에 답하고 식사나 쇼핑, 여행 등에 대한 개인화 추천을 하거나 이메일을 읽고 통지나 경고로 전체적으로 정보를 놓치지 않게 해준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휴멘스는 AI핀을 더 큰 사물인터넷 장치와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통합하고 디지털과 물리적 세계를 모두 연결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여러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인지 휴멘스는 AI핀을 럭셔리 기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가격은 1,000달러 전후로 상정하고 있어 이 정보가 맞다면 말 그대로 플래스깁 스마트폰 수준이다.

AI핀은 스크린리스 스마트폰이라고 생각하면 매력이 크지만 불안도 있다. 먼저 데이터 수집 장치를 항상 몸에 붙여서 걸어 다니는 것도 걱정이지만 휴멘스는 여러 프라이버시 보호 기능을 내장시켰다고 한다. 이 중 하나는 트러스트 라이트로 마이크나 카메라, 센서가 동작하고 있을 때에는 조명이 커져 알린다고 한다. 오히려 AI핀은 백그라운드에서 아마존 알렉사처럼 몰래 동작하고 있는 건 아니며 사용자가 물리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한 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현재 수집된 데이터가 어떻게 처리되고 어디에 저장되는지 데이터가 어딘가에 팔리지는 않는지 등 신경이 쓰일 사항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 또 사물인터넷 통합이나 대규모 데이터 수집 등 계획이 말한 대로라면 이는 사이버 범죄 온상이 될 수도 있어 서비스로서의 보안 대책도 궁금한 포인트다.

또 다른 지적 사항은 휴멘스에 상당한 경쟁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맥과 아이폰에서의 이용을 자동 기록해 AI로 처리하는 도구인 리와인드(Rewind)로부터 툴과 페어링해 사용하는 펜던트도 있다 리와인드 펜던트(Rewind Pendant)는 기능상 음성 기록만으로 AI핀보다 상당히 기능이 작지만 가격은 590달러로 훨씬 저렴하다. 또 휴멘스 출자자 중 1명인 오픈AI 샘 알트만 CEO는 아이폰 디자이너였던 조나단 아이브와 함께 AI계 아이폰을 개발 중이라는 보도도 있다. 다시 말해 휴멘스 투자자가 실은 최대 경쟁 상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뉴스레터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