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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독일 vs 영국 ‘전파의 전쟁’

제2차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은 영국 공습을 실시해 많은 피해를 안겼다. 독일 폭격기는 야간 공습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목표물에 폭격을 성공시켜 영국인을 공포로 빠뜨렸다. 독일 폭격기는 전파를 이용해 야간 공습에 성공했고 영국과 사이에서 전파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보통 야간에는 대상이 소등되는 탓에 발견하기가 어려워 당시 기술로는 야간 폭격으로 성과를 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 폭격기는 높은 정밀도로 야간 폭격을 했다. 당시 영국은 공습에 대비해 등화관제를 실시했기 때문에 유도 폭탄도 고급 GPS도 없던 독일 측 입장에서 야간 공습은 쉽지 않았다. 고급 기술이 없던 영국 공군도 마찬가지 입장. 야간 공습을 할 때에는 항공기 상단에 위치한 아스트로돔(Astrodome)으로 투명한 돔에서 밤하늘 별을 확인하고 육분의로 목표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물론 별자리와 육분의를 이용한 야간 공습 정확도는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독일 공군은 정확한 야간 공습을 성공시켰다. 공업 도시였던 코벤트리의 경우 독일 공군의 표적이 되어 도심 중심부가 파괴됐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독일 공군이 야간 공습으로 높은 정확도를 낸 비결은 전파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전쟁 중 독일 항공업계는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돈을 지출했다. 야간이거나 시야가 나쁠 때 안전하게 활주로에 착륙하는 건 조종사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중요하다. 독일에선 로렌츠빔(Lorenz beam)이라는 착륙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개발했다.

로렌츠빔 시스템 구조는 지상에서 항공기를 향해 2종류 전파를 발신하는 단순한 형태다. 활주로 양단에 설치한 안테나에서 활주로를 향해 날고 있는 항공기에게 지상에서 좌측은 대시 신호음, 우측에는 점 신호음 전파를 보낸다.

항공기 조종사는 라디오 주파수를 정해진 전파에 합치면 2개 전파가 겹치는 좁은 범위에서만 조종사는 점과 대시를 모두 들을 수 있다. 파일럿이 도트 소리 밖에 들을 수 없다면 항공기는 진행 방향 좌측으로 쏠려 있는 것이니 진로를 오른쪽으로 틀어 도트 소리와 대시 소리가 모두 들리는 위치를 찾으면 된다. 당연하지만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런 로렌츠빔 시스템을 응용해 독일은 표적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물론 공격 대상이 되는 지점에서 비행기에 전파를 계속 송신하는 건 어렵지만 자신의 영토에서 대상 상공까지 일직선으로 전파를 송신할 수 있게 유지하면 최소한 공격 대상 상공까지는 도착할 수 있다.

문제는 어느 시점에 폭탄을 투하할 것이냐다. 독일은 또 다른 신호를 추가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조종사는 첫 번째 신호에 따라 비거리를, 여기에 다른 신호 하나가 겹치는 지점에 폭탄을 투하한다. 신호 2개는 목표 상공에서만 교차하도록 조사한다면 조종사는 지상이 어두워도 정확한 타이밍에 폭탄을 투하할 수 있게 된다.

크니케바인(Knickebein)이라고 명명한 이 방법은 나치가 갖고 있는 유럽 전역 거점으로부터 송신하는 전파를 이용해 정확하게 영국 내 표적을 가리켰다.

영국도 곧바로 전파를 이용해 독일이 정확한 야간 공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독일 측 전파를 가장한 가짜 전파를 흘려 폭격기 조종사를 속이는 방해 작전을 실시했다. 이 작전은 성공했지만 독일 측은 다시 크니케바인을 개선해 X-장비(X-Gerät)라는 새로운 폭격기 유동 방법을 고안했다. X-장비는 코벤트리 공습에 이용한 유도 방법이기도 하다.

X-공습은 목표 지점으로 유도하는 전파 하나와 교차하는 전파 3개를 이용한다. 3개 전파는 각각 라인강, 오데르강, 엘베강의 이름을 땄다. 라인은 목표 30km 앞, 오데르는 10km, 엘베는 5km 앞을 가리킨다.

X-공습에서 목표 지점은 전파가 겹치는 교차로가 아닌 교차로 앞에 위치한다. 중요한 건 오데르와 엘베 사이 거리 5km와 엘베에서 목표 지점 사이의 거리가 같다는 점에서 오데르를 통과하면 파일럿이 갖고 있는 특수 시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엘베를 통과하면 시계 바늘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오데르와 엘베 사이, 엘베와 목표지점 사이의 거리가 같기 때문에 바늘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을 때 폭탄을 투하하면 목표 지점을 정확하게 폭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일부 폭격기 밖에 탑재할 수 없어 탑재기가 표적에 폭탄을 투하하면 후속 항공기는 이를 보고 폭탄을 투하했다.

시스템을 탑재한 항공기가 추락하면서 X-공급 구조도 영국 측이 알게 됐다. 하지만 역시 독일군은 다른 유도 방법을 고안했다. 이게 바로 Y-공습(Y-Gerät)이다. 전파 하나만 이용해 폭격기를 정확하게 유도하는 시스템이다.

Y-공습은 지상에서 폭격기를 향해 전파를 내고 폭격기에 탑재한 트랜스폰더가 이를 지상에 반사시킨다. 이 전파를 받은 지상 기지국은 전파가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과 방향을 계산하고 폭격기가 어디를 날고 있는지, 목적지까지 어떻게 날면 도착할 것인지 산출한다. 그런 다음 무선으로 파일럿에 지시해 목표 지점까지 유도한다.

영국이 Y-공습을 방해하기 위해 사용한 건 영국방송협회 BBC가 텔레비전 방송을 위해 알렌산드라 궁전에 건축한 전파탑이었다. 1939년부터 전파탑은 TV 방송을 중단하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Y-공습에 이용하는 주파수 대역과 BBC가 이용한 주파수 대역이 일치해 영국은 알렉산드라 궁전에서 독일로 가짜 반사 신호를 전송해 작전을 방해했다. 또 BBC 사운드 엔지니어는 독일 라디오 수신기에서 폭음을 내도록 해 파일럿의 고막을 다치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독일은 영국 공습을 포기하고 소련과의 전쟁에 항공기 전력을 돌리게 됐다. 만일 영국이 독일군 공습에 대항할 수단이 없었다면 전황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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