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벌레(Tardigrades)는 완보동물에 속하는 생물이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곰 벌레가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생물이라고 한다. 극한이나 방사선, 진공 상태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것. 완전히 물이 없는 곳에서도 살 수 있다고 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연구팀은 TDPs(Tardigrade intrinsically disordered proteins)라는 곰 벌레의 특정 단백질에 주목했다. 이 단백질은 곰 벌레의 몸 일부를 유리 같은 것으로 변화시켜 건조함에서 오는 세포 파괴를 방지해준다. 연구팀은 학술지(Molecular Cell)에 발표한 내용을 통해 이 같은 구조가 농업과 의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극한 환경 미생물로 분류되는 곰 벌레는 200년에 걸쳐 과학자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고대부터 존재해왔던 이 미생물은 끔찍한 자연 환경에서도 생존 가능한 이상한 생물이다. 보통 유전자라고 하면 부모에서 자식으로 계승되는 것이다. 유전자 수평 전파,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유전자를 계승할 수 없다. 그런데 곰 벌레 유전자는 이종 생명체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곰 벌레는 1,000종 이상이 존재하고 있다. 평소에는 축축한 이끼 위를 기어 가고 바닷속을 헤엄치기도 한다. 여러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극한의 땅이나 방사선 중, 수분이 없는 장소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곰 벌레는 건조해지면 자신의 표피 속에 다리와 머리를 집어넣어 공 모양을 만든다. 이렇게 하면 동면을 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는데 이 상태로 10년 이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물이 있으면 잠에서 깨어난다. 효모나 소금물 새우 같은 건 트레할로오스(trehalose)라는 당분을 이용해 건조함을 막는다. 과학자들은 곰 벌레 역시 같은 방식으로 건조함에서 몸을 지킨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조사 결과 곰 벌레 체내에선 트레할로오스가 검의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방법을 이용한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곰 벌레를 추위나 건조한 곳 등 다양한 스트레스 수준에 노출시켰다. 곰 벌레의 특정 단백질 TDPs가 나오는 걸 관찰하기 위한 것. 일반 단백질과 달리 TDPs는 3차원 구조를 갖고 있지 않아 유리 같은 표면을 갖췄다. 이 특수한 단백질의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이 유전자를 다른 생물에 주입해봤다.
TDPs는 곰 벌레가 스스로를 건조함에서 보호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단백질이다. TDPs를 박테리아나 효모에 넣자 건조함에 대한 내구성이 증가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지만 TDPs는 시험관 건조에 민감한 효소 같은 물질까지도 보호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한다. 유리 같은 고형물이 건조함에 민감한 분자를 코팅 처리해 망가지는 걸 막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트레할로오스를 이용하지 않고 곰 벌레가 건조함을 해결하는 방식은 흥미로운 일이 될 수 있다. 곰 벌레의 단백질 역시 트레할로오스처럼 세포나 구성 분자를 보호하기 위해 유리 같은 형태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차이라면 당분과 단백질 전혀 다른 걸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연구팀은 이 단백질은 여러 분야에 응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곡물을 가뭄에서 보호하거나 건조한 지역에서 의료용품을 냉장 보관할 필요가 없거나 인간에 적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2016년 연구팀은 곰 벌레 단백질을 인간 배양 세포에 통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바 있다. 물론 아직 오랜 연구가 필요하지만 만일 곰 벌레를 지키기 위한 단백질이 인간을 건조함이나 추위, 방사선으로부터 지켜줄 수도 있는 상상을 해볼 수도 있을 듯하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