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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있었다” 인류 멸망 후를 위한 블랙박스

어스블랙박스(Earth Black Box)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모노리스 같은 무기질 물체 속에 인류 멸망 뒤에도 인류가 여기에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정보를 정리한 블랙박스를 준비한다는 프로젝트다.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는 항공사고 원인 조사에 도움이 되는 기록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지구 버전으로 만들려는 프로젝트가 바로 어스블랙박스다. 어스블랙박스는 호주 태즈메이니아주 서해안에 건설 예정으로 가로 4×10×3m 크기 강철 건물이다.

건설 후보지로는 몰타, 노르웨이, 카타르 등도 거론됐지만 지정학적, 지질학적 안정성이나 괴멸적인 기후 변화가 일어난 경우를 고려해 태즈메이니아주 건조를 결정했다고 한다. 공식 사이트에선 인류는 생활 양식을 극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기후 변화나 다른 인위적 위험이 우리 인류 문명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말로 기후 변화에 대한 위기감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유엔이 2021년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2100년까지 평균 기온은 2.7도 상승할 전망이며 이 온도 변화를 1.5∼2도 이내로 억제하려면 203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연간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어스블랙박스 건설을 하는 호주 최대 마케팅 기업인 클레멘저 BBDO(Clemenger BBDO) 짐 커티스는 프로젝트가 완전히 비영리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설계도 기능성에 중점을 두고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어스블랙박스 외벽 부분에는 7.5cm 강판을 사용할 예정이며 건설 종사자는 인류보다 오래 존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내부에는 많은 스토리지 드라이브가 저장되어 있으며 모든 인터넷 연결이 가능하다. 전력은 구조물 지붕 부분에 위치한 태양전지판에서 공급되기 때문에 지역 전력망이 다운되어도 자력으로 전력을 취할 수 있다. 낮에는 어스블랙박스가 인터넷을 통해 과학 관련 데이터를 다운로드하며 기본적으로 기후변화 관련 자료를 수집한다.

프로젝트에 따르면 어스블랙박스가 수집하는 데이터는 대략 분류해 2종류다. 하나는 육지와 바다 온도, 해양 산성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종 멸종, 토지 이용 변화, 인구, 군사기, 에너지 소비 등 측정치다. 다른 하나는 신문 표제와 소셜미디어 투고, COP 기후변화 회의 등 주요 회의 관련 뉴스나 컨텍스트 데이터다.

커티스는 어스블랙박스에 대해 기후 변화 결과로 지구가 붕괴된 경우 배우기 위한 지식을 남겨진 이들에게 맡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건축물 건설은 2022년 중반 개시 예정이다. 2021년 11월 개최된 유엔 기후변화 조약 제26회 COP(COP 26)을 시작으로 어스블랙박스 내 데이터 수집은 시작됐다. 프로젝트 담당자는 압축과 아카이브를 이용해 앞으로 30∼50년간 데이터를 저장할 충분한 스토리지 용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이 프로젝트는 스토리지에 데이터를 수집할 뿐 아니라. 강판에 정보를 각인해 더 장기적인 데이터 보존이 가능해진다고 보고 있다.

또 어스블랙박스 개발자는 긴 간격으로 통계 데이터를 우주로 전송하거나 어스블랙박스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는 걸 전달하기 위한 하트비트 탑재 같은 기능을 검토하고 있다며 데이터 수집 이외에 독특한 기능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원영 기자

컴퓨터 전문 월간지인 편집장을 지내고 가격비교쇼핑몰 다나와를 거치며 인터넷 비즈니스 기획 관련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디지털 IT에 아날로그 감성을 접목해 수작업으로 마우스 패드를 제작 · 판매하는 상상공작소(www.glasspad.co.kr)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IT와 기술의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마음으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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