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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술 없던 19세기…백신은 어떻게 운반했을까

백신은 감염 예방을 위해 약독화, 무독화 항원을 투여해 면역을 획득하는 구조다. 역사는 18세기말에 발견된 종두, 천연두 백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교통과 운송 시설이 없던 19세기 사람들은 어떻게 백신을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운반했을까.

2020년 화이자와 모더니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당국 승인을 얻은 국가에 곧바로 보내졌다. 백신에 따라 모더나는 영하 20도, 화이자는 영하 70도 극저온 수송과 보관이 필요하기 때문에 항공사는 대형 전기 냉장 시설이나 액체 질소를 이용한 다층 구조 냉장 용기 등 새로운 운송 설비를 도입하고 있다.

현대에선 항공기 등을 이용한 고속 교통망과 저온 저장 기술 발달로 불활성화되기 쉬운 백신을 전 세계 각지로 수송하는 게 용이하다. 하지만 처음 종두가 개발된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는 이런 수송망과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신 수송이 큰 과제였다.

영국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 감염을 방지하는 종두법으 개발한 18세기말 백신 수송은 더 어려웠다. 천연두는 치사율이 20∼50%로 매우 높고 후유증도 무겁고 전 세계에서 종종 유행해 많은 사망자를 낸 심각한 감염이다.

제너가 주목한 건 우유 등 가축과 접촉해 우두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게 농촌 전설이 됐다는 것이다. 제너는 우두와 천연두 연구를 계속해 우두 환자 고름을 건강한 사람에게 접종해 천연두 감염을 방지하는 종두법을 설립했다. 1796년 자녀에게 종두법을 이용해 효과를 확인하고 1798년 일련의 성과를 발표했다. 또 이후 연구에선 우두 바이러스가 천연두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게 아니라 우두 고름이 섞여 있는 우두 바이러스는 다른 바이러스가 천연두 백신으로 기능하고 있던 게 판명됐다.

천연두 감염을 방지하는데 종두는 효과적이었지만 종두는 열이나 햇빛에서 불활성화되기 쉬웠기 때문에 당시 기술로 종두를 저장하는 가장 좋은 용기는 인체였다. 따라서 우두를 접종한 사람 체내에서 면역체계가 바이러스를 이길 때까지 그 사람 몸에 나타난 농포에서 고름을 제거하고 다른 사람에게 접종하는 인체를 이용한 종두 릴레이로 종두를 전파해나갔다.

종두를 저장하려면 끊임없이 누군가 몸에 우두를 접종하고 다른 사람에게 우두를 이식 가능한 상태로 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종두 접종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우두를 제공할 걸 의무화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영국 글래스고에서 우두를 접종한 아이를 다시 병원에 데리고 온 부모에게 접종시켜 징수한 금액을 환불하는 것으로 아이에게 종두를 추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후 종두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응용법과 새로운 저장 기술이 개발됐다.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4세는 1803년 의사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드 발미스(francisco Javier de Balmis)에게 남북 아메리카 스페인 식민지에 종두를 옮길 걸 주문했다. 불활성화하기 쉬운 종두를 무사히 가져가기 위해 발미스는 인체를 이용한 종두 저장을 응용했다.

그는 먼저 지금까지 천연두와 우두가 걸린 적이 있는 고아 22명을 모아 출항 직전 이 중 2명에게 우두를 접종했다. 이후 대서양을 횡단하는 선박에 승선한 발미스는 우두에 걸린 고아에서 다른 고아에게 종두를 옮기는 작업을 반복해 종두를 옮기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미국에 종두가 전해진 건 1800년이다. 하버드대학 교수였던 벤자민 워터하우스(Benjamin Waterhouse)가 당시 부통령이던 토머스 제퍼슨 원조를 받아 수입에 성공했다.

제퍼슨도 종두 접종을 희망했지만 하버드 대학에서 종두를 산 채로 전달하는 데 여러 번 실패했다. 따라서 제퍼슨은 내부 용기에 종두 림프액을 저장하고 이 용기를 둘러싼 외부 용기에 찬물을 담은 용기를 제안하고 하버드 대학에 종두를 주문했다고 한다.

진드 캐로(Jean de Carro)는 유럽에서 열성적 종두 지지자로 오스트리아와 폴란드, 그리스, 베네치아, 콘스탄티노플 등 유럽 동부에 종두를 도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제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두 림프액을 적신 보푸라기를 유리판 2장으로 봉쇄하고 햇빛을 막기 위해 검은 종이로 싸서 밀랍해 봉인하는 수법으로 바그다드에 종두를 제공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바드다드에 도착한 종두는 아르메니아인 자녀가 접종된 인체를 이용한 릴레이로 인도에 도달했다. 인도에서 처음으로 종두 접종을 받은 하인의 딸로 그 다음주에는 다른 아이 5명에게 우두를 접종했다.

인도에서 종두를 보급하는데 문제가 된 건 종두가 외국에서 온 낯선 것인 데다 기존 종교 의료 반발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또 종두는 다양한 계급을 통해 전파됐기 때문에 엄격한 카스트 제도를 가진 힌두교인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따라서 영국인은 우두를 잡종한 왕족 등을 기용한 광고를 실시해서야 종두를 인도인 사이에 전파했다고 한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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