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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화재보험 지도가 역사적 가치 지니는 이유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미국에서는 여러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로 인한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1866년에 다니엘 알프레드 샌본이 설립한 샌본맵컴퍼니(The Sanborn Map Company)는 샌본맵(Sanborn maps)이라고 불리는 보험 자료를 작성했다. 이 샌본맵이 당시 화재 발생 시에 유용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역사적 가치가 높은 지도로 주목받게 된 이유는 뭘까.

1859년에 철도 노동자였던 에드윈 드레이크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기계 굴착으로 석유를 채굴한 드레이크 유전 발견으로 근대 석유 산업이 시작됐다. 석유에서 정제된 등유를 사용한 조명은 고래기름보다 저렴하고 촛불보다 밝았지만 가연성이 높아 건물이 밀집한 미국 도시에서 여러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1871년 시카고 대화재에서는 건물 1만 7,500채가 소실됐고 이듬해 보스턴 대화재에서는 금융가 대부분을 포함한 건물 776채가 소실되어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손실을 입혔다.

이때 도움이 된 게 보험회사와 샌본맵이다. 샌본맵은 색 구분, 기호, 약어 등 복잡한 시스템을 사용해 건축 자재부터 도로 폭, 급수탑 위치부터 가연성 화학물질 존재, 건물 높이부터 천창 수까지 일반 지도로는 불가능한 정보량을 보여줬다. 그래서 대규모 화재로 도시가 흔적도 없이 소실된 경우에도 보험회사가 보험료를 할당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샌본맵을 참고해 산출할 수 있었다.

샌본맵컴퍼니는 최종적으로 북미에 있는 1만 2,000개 이상 도시나 마을, 그리고 인구 1,000명 이상 커뮤니티는 거의 모두 망라한 샌본맵을 작성했다. 회사는 조사할 지역에 직원을 파견해 수개월 동안 체류하며 모든 도로와 건물을 스케치하고 측정해 지도를 작성했기 때문에 제1차세계대전 중 측량사가 도면을 작성하는 게 독일 스파이가 아닌지 의심받아 신고된 일화도 남아 있다고 한다.

샌본맵 또 다른 특징으로 지도가 정기적으로 붙여넣기(pasters)에 의해 갱신된 점이 있다. 지도가 이미 작성된 지역에서 건물이나 경관의 변화가 있었을 경우 수정 내용을 위에서 붙여 지도를 최신 상태로 유지했다.

샌본맵컴퍼니는 화재 위험 평가 방법 고도화와 새로운 데이터 저장 형식 등장으로 거대하고 무거운 샌본맵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등 이유로 이익이 크게 감소해 1961년에는 새로운 지도 제작도 중단하고 1977년에는 지도 붙여넣기 갱신도 종료했다. 같은 해 당시 회사 사장이었던 S. 그릴리 웰즈는 오래된 샌본 지도책 45권을 의회도서관에 기증했다.

샌본맵은 사업으로서는 막을 내렸지만 의회도서관에 기증된 뒤 점차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시 당국이 건물 보존 가치를 결정할 때나 역사가나 역사소설가가 특정 연도 특정 거리가 어떤 경관이었는지 파악하고 싶을 때 샌본맵이 참조된다. 또 인구통계학자가 도시 성장이나 쇠퇴를 조사하고 싶을 때는 샌본맵식 붙여넣기 갱신이 유용했다.

그 중에서도 관심이 높아진 건 역사적 관점에서 성씨나 칭호, 가계나 혈통에 대해 연구하는 계보학에 의한 것이다. 의회도서관 관계자는 의회도서관이 샌본맵 컬렉션을 온라인에서도 참조할 수 있다고 공지했을 때 과거 최대 반응이 있었다며 그 중 상당 부분이 계보학자에 의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편 샌본맵 컬렉션을 가장 많이 모은 의회도서관은 온라인에서 샌본맵을 공개하고 있다. 의회도서관 페이지에서는 온라인으로 공개된 3만 5,141건, 온라인 미공개까지 포함하면 5만 1,383건에 이르는 샌본맵을 연도별, 지역별로 검색하여 참조할 수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원영 기자

컴퓨터 전문 월간지인 편집장을 지내고 가격비교쇼핑몰 다나와를 거치며 인터넷 비즈니스 기획 관련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디지털 IT에 아날로그 감성을 접목해 수작업으로 마우스 패드를 제작 · 판매하는 상상공작소(www.glasspad.co.kr)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IT와 기술의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마음으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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