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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블랙박스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항공기 사고가 발생했을 때 큰 도움이 되는 건 블랙박스다. 1960년대 이후 전 세계 모든 민항 여객기에 탑재된 블랙박스가 현대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건 1950년대였다.

블랙박스는 실물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발견하기 쉽도록 밝은 오렌지색을 하고 있다. 내부에는 비행 고도나 속도 등을 기록한 비행 데이터 리코더 FDR과 조종석 내 음성을 기록한 조종석 보이스 리코더 CVR이 내장되어 있어 기체가 추락하거나 해도 파손되지 않는 소재와 구조여서 바다로 추락해도 회수할 수 있도록 내수성도 갖추고 있다.

FDR이라고 하면 인류 첫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도 프로펠러 회전수를 기록하는 장치를 탑재하고 있었으며 이후 고도나 속도를 사진 기반으로 기록하는 FDR이 1939년 프랑스에서 발명됐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도 FDR이 개발됐다.

여기에 CVR을 결합한 건 호주 연구자인 데이비드 워렌이다. 그는 선교사의 아들로 라디오 애호가이기도 했다. 1953년 영국 항공기 제조사인 드 하빌랜드의 여객기 코멧이 추락하는 사고가 연속 발생했다. 당시 호주 국방부 항공연구소에 근무했던 워렌은 코멧 추락에 관한 조사에 협력하게 됐다. 설문 조사 중 워렌은 전시회에서 세계 첫 포켓 리코더인 미니폰(Minifon)을 만났다.

미니폰을 본 그는 만일 추락한 코멧을 타고 있던 사람이 미니폰을 사용하고 있었다면 잔해 중 미니폰을 찾아내 재생해 사고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게 CVR 발상이 됐다.

다만 워렌의 상사는 아이디어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고 연료 탱크 폭발 우려를 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아이디어를 포기하지 못한 워렌은 주위 협력을 얻어 사고 직전 음성이나 비행 데이터를 최대 4시간 보존할 수 있는 블랙박스 프로로타입을 1958년 완성시켰다. 또 호주 당국은 그의 블랙박스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연구실을 방문한 영국항공 당국자는 블랙박스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권리는 영국 제조사(S.Davall & Sons)가 획득했다. 처음으로 투입된 제품은 외형 때문에 붉은 계란(Red Egg)으로 불렸고 이후 블랙박스는 제조사에 관계없이 모두 찾기 쉬운 오렌지색으로 만들어지게 됐다.

이후 블랙박스는 미세한 진화를 이루면서도 계속 사용되고 있으며 항공사에게는 안전하게 착륙한 항공편에서 데이터를 취해 치명적 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문제를 식별하는 절차에 도움이 된다는 것. 문제가 계속 개선된 결과 2022년 연간 3,220만 편 중 사망사고가 불과 5건으로 상업 항공 사상 가장 안전한 1년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항공기 사고 원인이 밝혀진 건 아니며 2014년 발생한 말레이시아항공 370편 추락 사고의 경우 기체 잔해는 블랙박스를 포함해 거의 발견되지 않았고 추락 위치조차 불명인 상태다. 이 때문에 블랙박스 선도 업체인 허니웰은 FDR이나 CVR 데이터를 위성 네트워크를 통해 저장하는 새로운 블랙박스를 개발하고 있지만 프라이버시 문제 등으로 보급되지는 않았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원영 기자

컴퓨터 전문 월간지인 편집장을 지내고 가격비교쇼핑몰 다나와를 거치며 인터넷 비즈니스 기획 관련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디지털 IT에 아날로그 감성을 접목해 수작업으로 마우스 패드를 제작 · 판매하는 상상공작소(www.glasspad.co.kr)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IT와 기술의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마음으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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