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서적 140만권을 무료 공개한 인터넷아카이브를 대형 출판사가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건 재판에서 1심 지방법원은 출판사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원래 인터넷아카이브에서 빌릴 수 있는 책은 기본적으로 1인 1권 뿐으로 누군가에게 대출 중인 책은 반환될 때까지 빌릴 수 없는 등 제한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각국에서 긴급 사태 선언이 나오고 현실 도서관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 늘면서 인터넷아카이브는 제한을 일시 완화해 오픈라이브러리 컬렉션을 1인 10권까지 대기시간 없이 빌릴 수 있도록 하는 NEL(National Emergency Library)을 공개했다.
2020년 3월 24일 개설된 NEL은 2020년 6월 30일까지 또는 미국 국가 비상사태 선언이 종료되는 날 중 늦은 날까지 계속될 예정이었지만 공개된 서적에 저작권을 가진 게 포함되어 있다며 대형 출판사 4곳으로부터 소송을 받아 2020년 6월 16일 폐쇄됐다.
원고인 출판사는 원고 허가 없이 인쇄물을 스캔하고 디지털 복제물을 웹사이트 사용자에게 대여해 서적 127권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고 인터넷아카이브는 공정 사용 원칙에 의해 면책된다고 반박했다.
공정 사용 원칙은 과학 진보와 유용한 예술을 촉진하는 저작권 목적 자체를 달성하기 위해 저작물 일부 무허가 사용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비평과 코멘트, 보도, 교육, 학술, 연구 등 목적으로 저작물을 공정 사용하는 행위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되지 않는다.
뉴욕주 남부 지방법원이 담당한 1심에선 인터넷아카이브 대출 행위가 변형적인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됐다. 인터넷아카이브는 출판 서적을 2차 이용하는 형태로 배포하고 있지만 이 때 새로운 목적이나 다른 성격을 갖는 새로운 무언가를 서적에 추가하고 추가 표현, 의미, 메시지를 담아 원래 작품을 변경하는 건 아니다. 공정 사용 원칙에서 저작물 사용이 공공을 위해 이뤄지는지, 저작권 소유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저작물 일부가 복사됐는지, 저작물을 새로운 것에 변형시켰는지 등을 고려하고 있지만 이번 인터넷아카이브 2차 이용은 변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또 책을 스캔해 온라인 게시하는 구글 도서는 단순히 사본을 공개하는 게 아니라 책 내용을 검색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변형적으로 인정된다. 도서관이 물리적 서적을 사용자에게 대여할 수 있는 건 저작권이 있는 서적을 소유하는 개인에게 이 복제물을 판매, 전시, 대출하는 걸 허가하는 최초 판매 원칙(first sale doctrine)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온라인에선 CDL(Controlled Digital Lending)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어 도서관이 소유하는 부수만을 대출하는 게 인정된다.
인터넷아카이브는 자신이 소유한 물리적 서적 사본과 제휴하는 도서관이 소유한 서적 사본을 최대 1부 카운팅해 전자서적 대출수를 결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팬데믹 기간 중 이런 관행은 없었고 인터넷아카이브가 권리를 갖은 것보다 더 많은 전자책 사본을 대출하고 있던 것도 문제시됐다.
더구나 인터넷아카이브가 전자책 공개로 이익을 얻었을 가능성도 지적됐다. 저작권법은 특정 사례에서 작품을 사용하는 게 공정 사용인지 여부를 결정할 때 몇 가지 요소를 고려하도록 요청한다. 그 중 하나가 2차 사용이 상업적 성격인지 비영리 교육 목적인지 여부다.
원고 측 주장에 따르면 인터넷아카이브는 NEL 공개로 새로운 회원을 모아 기부를 모집하고 있다고 한다. 또 온라인 서적 판매를 실시하는 BWB(Better World Books)와 제휴해 웹사이트에 BWB로 구입하는 버튼을 마련, 고객이 BWB에 지불한 대금 일부를 BWB로부터 받는 상업 행위도 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것으로부터 인터넷아카이브 행위는 이점이나 이익을 얻고 있다고 볼 수 있어 상업, 비상업을 구별하는 요소에 있어선 원고에 유리한 판단이 내려졌다.
이어 저작물 사용 또는 복제 사용이 저작물 잠재적 시장 또는 가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요소도 고려됐다. 이 요소는 2차 사용자가 경쟁하는 대안을 제공하는 게 원래 시장을 빼앗는지 여부에 중점을 둔다.
최근 전자책이 인기를 끌면서 출판사는 도서관에 전자책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런 비즈니스는 출판사에게 큰 수익원이 되고 있지만 인터넷아카이브는 출판사에게 전자책 라이선스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도서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아카이브는 출판사 지위를 빼앗고 있다고 인정됐다. 인터넷아카이브는 물리적 도서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용자가 쉽게 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연구와 학술, 문화 참여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런 이익은 출판사에게 주는 손해를 초과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
지방법원 판사는 인터넷아카이브 전자서적 이용은 NEL을 전개할 때 뿐 아니라 대출 도서관의 폭넓은 이용에 있어서도 상기 기준에 준거하지 않았다며 소송 시점 계속 공개 중인 오픈 라이브라리에도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300명 이상 저명 작가가 출판사와 업계단체에 소송 중지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하고 있으며 업계에서도 찬반이 나뉘어져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