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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서 몇 세기간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학만 있었던 이유

유럽에선 중세부턱 근세에 걸쳐 수많은 대학이 설립됐다. 하지만 영국섬 3분의 2를 차지하는 잉글랜드는 19세기 초까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 2개 밖에 대학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1686년 찰스 모턴이라는 성직자가 잉글랜드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60세였던 모튼은 소송을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탈출했는데 모튼이 저지른 죄는 런던 북부에 사는 사람들에게 강의를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현대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으로 차분한 이미지를 갖기 쉽지만 중세 대학에선 학생 사이에서 싸우고 지역사회와의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는 건 드물지 않다. 14세기 영국에 존재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도 예외가 아닌 중에는 폭력과 혼란을 피해 지역으로 피하는 학자도 적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1333년 옥스퍼드대학을 벗어나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에 있는 스탠포드라는 마을로 도망한 남성은 그곳에서 학생 교육을 시도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이 운동은 간과할 수 없었고 당시 영국 왕이던 에드워드3세도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 졸업생은 두 대학 이외에 강의를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게 했다.

스탠포드의 맹세로 알려진 이 제한은 1334년 이후 두 대학을 졸업한 모든 졸업생에게도 선서를 요구해 1827년까지 계속됐다. 모튼은 이 서약을 어겨 잉글랜드에서 쫓기게 된 것이다. 14세기 이후 유럽에선 대학 설립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14세기에는 이탈리아 피사대학과 체코 프라하 카렐대학, 폴란드 크라코프대학 등 수많은 국가에 대학이 설립됐다. 또 영국섬 북부에 있는 스코틀랜드에도 글래스고대학과 에던버러대학을 비롯한 5개 대학이 1582년까지 설립되어 있다.

한편 영국에서 대학 설립이 진행된 건 1827년 스탠포드의 맹세가 폐지된 이후다. 19세기 후반 설립된 대학 일부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 지원으로 설립된 것이다. 여기에서 떠오르는 건 왜 양교는 다른 대학이 설립되는 걸 막아왔고 양교의 시도가 잘 된 것인지, 양교는 왜 입장을 바꾸고 대학 설립을 지원했는지다.

이런 질문 중 가장 대답하기가 쉬운 건 왜 양교가 다른 대학이 설립되는 걸 막아왔는지다. 원래 대학은 일종의 동업자 조합, 길드로 학생 입학과 교육 질을 유지하고 지방자치단체 교섭을 해온 교ㅗ사와 학생 그룹에 불과했다. 길드가 이익을 독점하는 건 합리적이며 대학은 학위, 교육 등 제품 공급자로 다른 대학이 설립되는 움직임이나 독자적 교육 시스템을 방해해왔다고 한다.

길드인 대학이 독점을 시도하는 건 합리적이지만 중요한 건 고등교육기관을 독점하려는 시도가 잘 된 것일까. 실제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은 경쟁자를 배척, 수세기에 걸쳐 영국 고등교육기관 지위를 계속 점하는데 성공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이 대학이 교사와 학생을 관리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대학을 관리하고 싶다는 희망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교 독점 체제를 지원한 건 대학 존재를 위험시하는 교회와 정부였다고 할 수 있다.

교회에서 대학은 이단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위험한 존재였다. 실제로 14∼16세기에 걸쳐 교회 개혁을 요구한 옥스퍼드 신학자인 존 위클리프의 가르침에서 발전한 것이며 로버트 번스와 토마스 비루니 등 개혁 지지자도 케임브리지대학 출신이다.

대학이 2개 밖에 없는 상황은 대학에서 열리는 신학 논쟁을 관리하고 신학자를 감독할 교회에게도 윈윈이며 교회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 이외 대학이 설립될 수 있지 않았다. 따라서 다른 대학 설립을 막고 싶은 양교와 교회의 이해가 일치하고 독점 체제의 후원자 역할을 했던 것이다.

또 대학은 정치적 반역자를 낳을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해 체제 전복을 거론하는 반체제 인사의 온상이 될 위험이 있었다.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1668년 저술한 베헤모스(Behemoth)에서도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이 반역자의 핵심이었다고 지적되고 있다. 홉스의 주장은 과장될 것일지도 모르지만 대학ㄷ 내 수많은 학자가 모여 토론하는 장소가 문제를 일으키기 쉬운 건 사실이며 영국 정부는 대학 수를 줄이고 싶어 했다. 이 점에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대학과 체제 측 이해가 일치하고 스탠포드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정부도 협력하고 있던 것이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 독점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1820년대이며 이 시기는 반체제 인사에 완전한 시민적 자유가 로마카톨릭 신자 해방 운동이 격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교회와 체제의 권위가 약해진 상황에서 스탠프도의 맹세도 폐지되어 1828년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이 개교했고 1830년대 초반에는 교회 의향을 반영해 킹스칼리지런던도 개교하면서 양교 체제는 종말을 맞이한다.

이후 1870년대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은 새로운 대학 설립을 지원하게 되어 지금까지의 방침을 뒤집었다. 이유로는 고등 교육에 대한 접근을 확대하는 것 외에도 행정이나 교회 감시를 다른 대학에도 돌이키게 해 대학으로 독립을 유지하거나 양교가 영향력 있는 대학을 늘릴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제 잉글랜드 전역에 100여개 대학이 존재하고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원영 기자

컴퓨터 전문 월간지인 편집장을 지내고 가격비교쇼핑몰 다나와를 거치며 인터넷 비즈니스 기획 관련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디지털 IT에 아날로그 감성을 접목해 수작업으로 마우스 패드를 제작 · 판매하는 상상공작소(www.glasspad.co.kr)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IT와 기술의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마음으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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