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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의미가 없어지는 장소에서 경험하는 것

지구상 대부분 장소에서 현지 시간은 경도에 따라 달라지지만 북극 주변에선 경도가 거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북극 방문자는 어떤 시간대를 사용할 수 있다. 북극의 특이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여름에는 백야, 겨울에는 극야가 계속되면서 하루 구분 없이 시간이라는 게 전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북극 생활을 체험하는 환경과학연구소 직원이 시간이 엇는 북극에서 사는 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말한다.

북극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건 남극이지만 남극의 경우 여러 연구 시설이 있으며 상주 인구도 존재하기 때문에 시설마다 모국 같은 시간대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북극에서 열리는 조사 활동은 수가 적고 배도 가끔 방문하기 때문에 조사선 선장은 인접 국각 시간대를 사용하거나 선박 활동에 맞추는 형태로 시간대를 결정한다고 한다.

독일 교욱연구부가 소유한 쇄빙선(R/V Polarstern) 역시 북극에서 조사 연구 활동을 하는 선박 가운데 하나다. 지난 2019년 가을에도 폴라스턴은 북극에서 조사를 실시했지만 이 때 폴라스턴 선장은 6주간 일주일에 한 번 시계바늘을 1시간 되감는 작업을 했다. 이는 후임인 러시아 선박이 모스크바 시간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극에선 밤낮이 몇 개월 단위로 계속되기 때문에 2019년 10월 북극 일몰 후 3주간 어둠에 싸여 있었다. 폴라스턴에 있던 사람들에겐 아침 점심 저녁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리 정해진 아침 8시가 되면 선내에는 모닝콜이 흐르고 기상한다. 아침 식사 후 밖으로 나온 연구팀은 일정에 따라 얼음 위에 내려 확인을 하거나 실험실에서 미팅을 하기도 한다. 지구상 다양한 장소에서 시간은 체감할 수 있지만 폴라스턴에 사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질서의 환상을 만들기 위해 정해진 규칙에 불과한 것이다. 또 선원은 모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에게 위성을 통해 메시지를 보낼 수 있지만 전송 시간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TV나 뉴스, 행인도 없는 북극에서 몇 개월을 보내고 전혀 변화가 없는 나날을 의식적으로 보내게 되면 선원들은 같은 날이 계속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유일하게 시간 개념을 과학자로 기억하는 건 데이터 수집을 할 때다. 조사를 위한 계기는 배 주위 얼음에 배치되어 있으며 얼음 바다, 하늘에서 협정 세계시에 따라 정보를 수집한다. 진행 중인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때 그리고 일요일에 구워진 빵 냄새가 퍼질 때 선원들은 시간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라고 한다.

폴라스턴에서 나가면 선원에게 시간이라는 개념은 사라진다. 헬리콥터 창밖으로 봐도 근처에 어둠 뿐이어서 배에서 얼마나 거리가 떨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몸을 맞댄 연구자에게는 헤드라이트만 유일한 불빛이며 추위에 떠는 연구자의 심장소리만이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준다는 것. 프로젝트를 마치고 모국에 온 그들은 도처에 시간이 넘치는 것을 이상하게 느끼게 된다고 한다. 북극에서 몇 개월을 보낸 뒤 집에서 개에게 먹이를 주는 시간을 보내면서 시간은 숫자나 시간대, 지구가 도는 횟수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용환 기자

대기업을 다니다 기술에 눈을 떠 글쟁이로 전향한 빵덕후. 새로운 기술과 스타트업을 만나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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