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아이거(Robert Allen Iger)가 디즈니 CEO에 취임했을 당시 디즈니는 사업 부진과 경쟁업체인 픽사가 떠오르면서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이런 디즈니를 재건하고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키운 인물이 바로 밥 아이거다.
2005녀 디즈니 CEO로 취임한 그는 첫 번째 이사회에서 디즈니가 오래 전 아이들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게 됐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당시 브랜드 파워 조사에선 1995년 공개된 영화 토이스토리의 성공에 힘입어 급성장한 픽사가 선두에 올랐고 디즈니는 픽사에게 가족용 콘텐츠라는 자신의 지분을 빼앗겼다.
이런 이유로 아이거가 검토한 기사회생의 방법은 픽사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이미 대기업으로 성장한 픽사를 인수하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대기업인 디즈니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금보다 큰 난제는 픽사 CEO인 스티브 잡스였다.
당시에는 아이거의 전임자인 마이클 아이스너와 잡스가 앙숙이 되면서 오랫동안 협력 관계에 있던 디즈니와 픽사의 관계도 식은 상태였다. 아이거의 참모진은 잡스가 절대로 찬성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인수에 도달해도 철저한 저항 끝에 비참한 결과로 끝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이즈너는 원래 디즈니 산하 방송국 ABC(American Broadcasting Company) CEO였던 아이거를 설득해 디즈니에 끌어들인 인물이다. 아이거는 아이즈너를 존경했지만 둘의 성격은 정반대였다. 아이거는 명랑한 방임주의자이자 직관적 결정을 선호하는 인물이었지만 아이즈너는 비관주의자에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를 하고 결단할 때에도 시간을 보내면서 고민을 거듭하는 유형이었다. 아이즈너가 잡스와 맞지 않았던 이유는 아이즈너의 신중한 관료적 성격을 성격이 예민한 잡스가 싫어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거는 이사회 다음날 바로 잡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속전속결을 모토로 삼는 아이거도 잡스에게 연락할 때에는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그는 이후 저술한 회고록에서 이사회 다음날 아침 잡스에게 연락하기로 결정했지만 실제로 전화한 건 오후였다고 회고했다. 이 때 잡스는 연락이 되지 않았지만 이 날 18시 30분 아이거가 귀가 중일 때 잡스의 연락이 왔다.
차를 세운 아이거는 미친 아이디어가 있는데 가까운 시일 안에 만날 수 없냐고 했고 잡스는 지금 보자고 말했다. 아이거는 디즈니의 픽사 인수 얘기를 했고 잡스는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지금까지 들은 얘기 중 확실히 미친 얘기라고 말을 들었다.
이를 계기로 디즈니 이사로 취임한 잡스는 아이거에게 좋은 상담자가 됐다. 일을 시작할 때 항상 비즈니스 정장에 몸이 굳은 아이거에게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을 한 잡스는 정반대의 비즈니스 스타일을 갖고 있었지만 둘은 서로의 장점을 존중했다. 디즈니의 픽사 인수 절차가 완료됐을 무렵 잡스의 암이 재발했는데 잡스가 병상에 불러 이 사실을 털어놓은 건 자신의 아내 로렌 파월과 아이거 둘 뿐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74억 달러가 걸린 픽사 인수를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아이거는 지난 10년간 사업 부진에서 디즈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아이거는 반격을 도모하기 위한 3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이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최신 기술을 도입하는 것과 급성장하는 중국과 인도에 적극 진출할 것, 그리고 고품질 브랜드력이 있는 콘텐츠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다.
세 번째인 콘텐츠 투자라는 기본 이념은 디즈니가 2019년 서비스를 시작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Disney +)의 기초가 되는 개념이다. 당시에는 유튜브가 본격 서비스를 시작한 뒤 1년 가량이 지났을 뿐이고 넷플릭스는 아직 DVD 임대 사업자였다. 아이거가 이끄는 디즈니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시작하는 디즈니 플러스는 서비스 시작 전부터 등록자가 1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