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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로봇은 원격 조종이 아닙니다”

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일론 머스크는 사업이든 엑스에서의 발언이든 뭘 하든 주목받는다. 본인 뿐 아니라 주변, 크게 말하자면 업계 자체도 휩쓸리기 쉽다. 요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 휴머노이드 업계다.

요즘 로봇 업계가 신경 쓰고 있는 건 보는 사람에 대한 불신감. 이 로봇이 정말 스스로 움직이는거냐, 혹시 원격 조종은 아니냐는 것.

중국 로봇 기업 아스트리봇(Astribot)은 유튜브에 최신 로봇인 아스트리봇 S1 데모 영상을 공개했다. 요리하고 티셔츠를 접고 와인잔에 와인을 따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영상 왼쪽 아래에 계속 표시되는 원격 조종하고 있지 않다(No Teleoperation)는 문구.

오픈AI 휴머노이드 로봇인 피겨(Figure) 역시 3월 공개한 데모 영상에서 오픈AI 공동 창업자 브렛 애드콕(Brett Adcock)이 곧바로 엑스 계정을 통해 원격 조종하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캐나다 로봇 기업 샌추어리 AI(Sanctuary AI) 역시 최신 데모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중간에 조작은 자동이라는 화면이 나오며 이 문구는 화면을 가득 채우며 5초나 지속된다.

왜 로봇 기업들이 이렇게도 원격 조종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할까. 아마도 지난해 영상을 공개했다면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원격 조종이 아니냐는 불신감이 커진 이유는 머스크 때문이다.

머스크 씨가 이끄는 테슬라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데모 영상이 발단이었다. 검은 셔츠를 꼼꼼히 접는 옵티머스 모습이 공개됐는데 이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람이 로봇을 원격 조종한 것이었다.

원격 조종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예전부터 있던 기술이다. 문제는 현재 로봇 자동화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 보는 사람은 로봇이 스스로 움직이는 걸 자동화라고 착각한다. 최신 로봇 데모 영상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생각한다.

하지만 머스크 씨의 로봇은 달랐다. 머스크는 엑스에 영상을 올린 뒤 곧바로 자동화가 아니라고 추가로 썼다. 자동화라고 생각하게 만들려 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게 됐을 뿐이다. 그냥 생각했을 뿐인데 영상에는 원격 조종하는 사람이 안 나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기만당한 느낌이 들게 된다.

옵티머스가 처음 발표된 건 2021년이었다. 당시에는 로봇 자체가 아닌 타이츠를 입은 사람이 로봇 퍼포먼스를 한 것이었다. 이후 손을 흔들고 춤추고 원격 조종으로 셔츠를 접는 건 큰 진화지만 머스크가 호기롭게 설명하는 옵티머스 구상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따라서 실망감이 남는 것이다. 로봇 업계가 시청자로부터의 불신감과 싸우는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용환 기자

대기업을 다니다 기술에 눈을 떠 글쟁이로 전향한 빵덕후. 새로운 기술과 스타트업을 만나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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