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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직면했던 최악의 바이러스

2020년 전 세계에서 유행한 코로나19는 2023년 들어서도 종식되기는 커녕 재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화제에서는 멀어지고 있다. 1980년 근절이 선언될 때까지 수세기 동안 수억 명에 달하는 생명을 빼앗아 실명이나 청각 장애를 남기는 등 맹위를 떨쳤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게 있다. 바로 천연두다.

인류가 천연두로 고통 받아 온 역사는 오래됐다. 가장 오래된 흔적은 고대 이집트 미라나 3,000년 전 인도나 중국 기록에도 남아 있다. 16세기 천연두는 전 세계 주요 사인 중 하나가 됐고 18세기말 유럽에선 연간 40만 명이 천연두로 사망했다. 또 당시 실명 원인 중 3분의 1은 천연두가 원인이 되는 등 살아남은 사람도 후유증에 시달렸다. 20세기 들어서도 천연두는 적어도 3억 명 이상 생명을 빼앗은 것으로 추정된다.

생명을 빼앗을 때마다 사회에 혼란을 준 천연두지만 지금은 만일을 위해 러시아 코르조보와 미국 애틀랜타에 바이러스 샘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천연두의 위협 중 하나는 감염성이 높다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섞인 작은 비말을 흡입하면 곧 목 세포에 감염된다. 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면역 세포가 모여 대응에 나서지만 천연두에선 이게 뒤집어지게 된다. 면역체계가 감염된 세포를 파괴하고 바이러스를 흡수하면 천연두 바이러스는 병원체 정보를 수집해 면역 중추로 가져온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상 세포를 감염시킨다.

천연두 바이러스에 감염된 수상 세포는 전신에 돌진된 면역 거점을 연결하는 림프계로 돌아간다. 엄중한 방저에 나선 림프계는 많은 병원체에게 마지막 장소가 되지만 천연두 바이러스는 림프관을 통해 혈액 중이나 장기에 쇄도해 전신에 감염해 버린다.

감염 12일 뒤 바이러스가 전신에 퍼지면 면역계는 인터페론이라는 정보 전달 물질을 이용해 바이러스 감염을 지연시키고 체내에 있는 항바이러스 무기를 활성하시키려 한다. 그런데 천연두 바이러스는 이 인터페론을 비활성화하고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한 방어 시스템을 다운시킬 수 있다. 인체에는 보체계라는 보조 면역도 있지만 이 역시 천연두 바이러스에 의해 무효화된다.

이렇게 천연두 바이러스가 몸 곳곳에서 맹위를 떨치고 체내 모세혈관을 파괴하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난다. 호중구라는 면역 세포 등장이 그것. 호중구는 크고 작은 다양한 침입자에게 효과적이지만 천연두 바이러스에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 더 안 좋은 건 호중구가 강력한 화학 물질을 뱉고 싸우기 때문에 더 많은 세포가 죽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호중구가 일으킨 염증에 의해 혈관에서 체액이 조직으로 누출되면 전신에 발진이 생겨 증상은 점점 악화된다.

증상이 악화되면 환자는 고열로 이어지며 혈관이 막히거나 내장이 기능 부전에 빠지거나 폐에 물이 쌓여 호흡을 할 수 없게 된다. 이후 결말은 2가지다. 하나는 면역계가 통제를 되찾아 항바이러스 무기 기동에 성공해 감염된 세포를 파괴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다. 감염에서 회복하면 기억 세포가 천연두 바이러스를 기억하고 면역을 할 수 있다. 또는 감염과 이로 인한 면역계 혼란에 압도되어 죽음으로 이어진다.

천연두에 걸린 사람 3분의 1은 살아남더라도 몸에 흉터가 남아 시력과 청력을 잃을 수도 있다. 오랫동안 인류는 천연두로 목숨을 잃었지만 천연두에 걸린 적이 있는 사람은 2번째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인두법이라는 위험한 내기에 나선다. 이 방법은 먼저 천연두 증상이 가벼운 사람으로부터 병변부 일부를 채취한다. 이어 햇빛으로 건조한 뒤 미세하게 부순다. 이 가루를 환자 코에 불어 넣거나 피부에 가루를 붙이기도 한다. 이게 잘 되면 천연두는 가벼워져 면역을 얻을 수 있었다.

인두법으로 감염이 경증으로 끝나는 건 햇빛으로 바이러스가 손상되어 완전한 증상을 일으키지 않게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두법을 받은 사람 2∼3%는 천연두나 합병증으로 사망했지만 그래도 천연두 공포로부터 자신이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위험을 인지해 인두법을 받았다.

이후에도 인류와 천연두간 투쟁은 계속됐지만 18세기경 천연두가 아닌 소에 감염되는 우두를 이용해 면역을 획득하는 게 가능하고 더구나 훨씬 안전하다는 게 판명되며 승기가 보였다. 이게 인류 최대 위업이라고도 불리는 예방 접종의 시작이다.

백신이 개발된 뒤에도 천연두 위협은 계속됐고 200년간 무수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앞서 언급했듯 20세기에만 3억 명 이상이 천연두로 사망하고 있다. 1966년 세계보건기구 WHO는 인류가 마지막 결전에 임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전 세계 각지에 천연두 뉴스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천연두가 유행한 지역에서 환자 격리와 백신 투여가 이뤄졌다.

천연두는 인간에게만 감염되기 때문에 사람에서 사람으로 감염 연쇄를 멈출 수 있으면 감염 확대를 막을 수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 1977년 소말리아 마르카에서 확인된 케이스를 마지막으로 자연 감염에 의한 천연두 환자는 보이지 않게 됐다. 그리고 첫 백신 사용부터 200년을 고비로 눈앞에 둔 1980년 천연두 근절이 선언됐다. 이렇게 인류 최악의 적이었던 천연두는 인류 사상 처음으로 유일하게 근절하게 성공한 감염증이 됐다.

정용환 기자

대기업을 다니다 기술에 눈을 떠 글쟁이로 전향한 빵덕후. 새로운 기술과 스타트업을 만나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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