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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참새 대량 살상이 대기근 불러왔던 이유

1950년대 모택동이 진행한 해충과 해수 구제 운동에 따라 쌀을 먹는 것으로 알려진 참새가 대량 살상됐다. 해수가 줄어 원래라면 쌀 수확량이 증가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대흉작을 일으키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1945년부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을 맡은 모택동은 중국인을 위해 도시와 농촌에 대한 대개혁을 실행에 옮겼다. 1958년부터 1961년에 걸쳐 중국은 대약진 운동을 내걸고 공업화와 농작물 증산을 목적으로 한 캠페인을 실시했다. 그 중에는 국내 4대 해충을 구제해 병 만연을 막는 사해 구제 운동(Chú Sì Hài)이 있었다.

여기에 들어가는 대상은 쥐, 모기, 파리, 참새 4종류다. 이들은 질병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참새는 곡물을 먹는다는 의심이 있었기 때문에 대상에 들어갔다. 소중한 식량 증산에 힘을 쏟던 중국 정부에 있어 이런 해는 없애는 게 시급했던 것.

이에 따라 1959년 중국민에게 참새를 제거하는 걸 의무화하는 법률이 일찌감치 성립됐다. 참새가 둥지에서 쉬지 않도록 냄비와 프라이팬을 치며 전국에서 둥지를 파괴하고 발견된 참새를 죽이자 참새는 자연 서식지에서 쫓겨 더 안전한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 중에서도 베이징 폴란드대사관은 참새 살처분을 거부하고 남은 참새 피난소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참새를 지키기 위해 중국인 출입도 거부한 폴란드 대사관도 중국인이 대사관을 둘러싸고 이틀에 걸쳐 북을 울려 참새를 죽게 쫓았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당초 모택동에 있어 사해 구제 운동은 효율적으로 기능하고 있던 것 같았다. 모택동은 참새 1마리당 연간 쌀 1kg을 절약할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실제로는 벼농사에 있어 더 파괴적인 생태학적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참새는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메뚜기를 포함한 많은 곤충을 포식하는 동물이다. 포식자인 참새를 배제하는 건 중국에 괴멸적 타격을 주게 됐다. 결과적으로 1년간 지속된 대약진 운동은 예상한 성과를 올릴 수 없었고 쌀 생산을 중심으로 많은 흉작과 생태계 황폐가 일어나 중국 내 1,500만∼5,500만 명이 죽게 된다. 농작물 수확량이 감소하면서 농민이 철강 생산과 건설로 옮겨 농작물은 밭에서 부패한 채 방지되기도 했다.

이후 중국은 생태계 붕괴를 막기 위해 소련에서 참새 25만 마리를 수입하게 된다. 참새가 생태계로 돌아온 뒤 메뚜기 개체군이 감소하고 흉작은 줄었다고 한다. 이후 사하 구제 운동은 참새에서 얼룩말로 대상을 옮기게 됐다.

스마트폰 정도 무게인 새가 괴멸적 흉작 계기가 됐다고는 믿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생태계가 흐트러질 때마다 인간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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