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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테이션3 슈퍼컴퓨터 활약史

지난 2006년 소니가 출시한 플레이스테이션3은 표준 풀HD 규격을 지원하고 가정용 게임기로는 처음으로 블루레이 드라이브와 HDMI를 지원하는 제품이었다. 이런 플레이스테이션3은 사실 슈퍼컴퓨터 구축에도 활용됐다.

물론 슈퍼컴퓨터로 활약한 것으로 잘 알려진 건 플레이스테이션3이지만 사실 플레이스테이션2 역시 슈퍼컴퓨터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02년 1월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2용 리눅스 배포판인 PS2 리눅스(PS2 Linux) 정식 버전을 출시하면서 가정용 게임기도 클러스터화하면 슈퍼컴퓨터로 활용할 가능성은 현실화됐다.

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 국립슈퍼컴퓨터응용연구소 NCSA(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는 2002년 플레이스테이션2를 대량 구입하고 PS2 리눅스를 도입, 플레이스테이션2로 슈퍼컴퓨터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NCSA 과학자인 크레이그 스테판은 플레이스테이션2 60∼70대를 병렬 연결해 코드를 작성해 라이브러리를 구축했다. 하지만 메모리에 기술적 문제가 발생해 병렬 연결 자체는 성공했지만 결국 슈퍼컴퓨팅은 할 수 없었다.

그는 연산을 시작할 때마다 실행한 시스템 커널이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재시작을 해야 했다고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NCSA는 플레이스테이션2를 슈퍼컴퓨터화하는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당시 대량으로 구입한 플레이스테이션2 중 1대는 여전히 그의 책상 위에 기념으로 놓여 있다고 한다.

이런 플레이스테이션2 후속 기종인 플레이스테이션3은 파워PC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셀 브로드밴드 엔진(Cell Broadband Engine)이라는 CPU를 탑재한 당시로는 고성능 머신이었다. 출시 초기에는 플레이스테이션2보다 쉽게 리눅스를 도입할 수 있기도 했다.

실제로 플레이스테이션3을 이용하면 전 세계 규모로 진행한 분산 컴퓨팅 프로젝트 폴딩앳홈(Folding@Home)에 참여 가능하며 난치병 원인이 되는 단백질 분석에 이용됐다. 2007년 플레이스테이션3은 1페타플롭스를 달성했고 2008년에는 플레이스테이션3에서 폴딩앳홈에 참여하는 사람이 100만명을 넘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플레이스테이션3의 클러스터 슈퍼컴퓨터 활약은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예를 들어 MIT 다트머스 캠퍼승에선 플레이스테이션3을 대량 구입해 냉장 운송용 컨테이너에 수납해 슈퍼컴퓨터로 운용했다. 이곳에서 블랙홀을 연구하는 한 과학자는 블랙홀 시뮬레이션 연구는 사회 기여도가 낮은 것으로 간주해 좀처럼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하지만 같은 부서에 있던 연구자가 플레이스테이션3 CPU가 뛰어나니 슈퍼컴퓨터처럼 쓸 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고 결국 직접 플레이스테이션3을 구입해 슈퍼컴퓨터 구축을 시작했다고 한다.

연구팀은 플레이스테이션3 클러스터 구축을 진행하고 코드 형태도 몇 개월 동안 안정화시켰다. 결국 플레이스텡이션3 176대를 연결해 블랙홀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100대 이상 플레이스테이션3을 구입해 동시에 실행하면 상당한 비용이 들지만 사실 일반적인 슈퍼컴퓨터과 견주면 몇 분의 1 비용으로 끝날 정도다.

다트머스 캠퍼스에선 지금도 플레이스테이션3 클러스터가 천체 물리학 연구를 위한 슈퍼컴퓨터로 이용된다. 이곳은 학내에서 인기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고 한다.

블랙홀 연구용 슈퍼컴퓨터 구축 외에도 거의 같은 시기인 2007년 뉴욕 공군 연구소에서도 플레이스테이션3을 이용한 슈퍼컴퓨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미 공군 연구소에서 프로젝트가 궤도에 오른 2010년 소니는 리눅스 등 다른 운영체제를 설치할 수 있는 기능을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삭제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 탓에 미 공군은 펌웨어를 업데이트하지 않은 재고 플레이스테이션3을 판매하라고 소니 측과 협상했다. 이에 따라 미 공군은 1,700대 이상 플레이스테이션3을 연결한 콘도르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었다. 감시 드론 화상 처리 등에 이용한 콘도르 클러스터는 2010년 12월 세계에서 35번째로 빠른 슈퍼컴퓨터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2013년 플레이스테이션3 다음 모델로 나온 플레이스테이션4는 기존 모델을 웃도는 사양을 갖춘 게임기였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4는 게임기에 특화한 시스템으로 설계했고 슈퍼컴퓨터 운용은 상당히 어려워졌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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