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사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정부가 구체적인 구상까지 하고 있다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른 국가의 섬을 사겠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미국은 1917년 덴마크로부터 버진아일랜드 3개 섬을 구입한 적이 있다. 무려 50년이나 걸린 협상 끝의 일이지만.
버진아일랜드는 7,000개 섬을 포함하고 있는 서인도 제도 중 일부다. 서인도 제도를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버진아일랜드의 세인트크로이, 세인트존, 세인트토머스 섬에 도착해 현지 부족 6명을 잡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덴마크는 18세기 이들 3개섬 소유권을 얻고 식민지로 삼아 럼주와 설탕 농장을 설립한 뒤 아프리카 노예를 강제 노동하게 했다.
1848년 7월 세인트크로이 섬에서 노예 수백 명이 반란을 일으켜 자유를 쟁취한다. 3개 섬에서 노예 제도를 결국 폐지했지만 그 결과 버진아일랜드의 운영비용은 비싸고 덴마크에겐 두통거리가 된다.
여기에서 등장한 게 미국이다. 19세기 후반 미국은 2가지 이유에서 버진아일랜드 인수에 눈독을 들인다. 첫 번째 이유는 경제적 이익이다. 다른 하나는 국방 문제다. 당시 독일이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관심을 강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었고 미국은 국토 방위에 대한 우려에서 버진아일랜드가 독일에 지배되는 걸 피하고 싶었다.
미국이 덴마크와 협상에 나선 건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이다. 미국 헨리 호 국무장관은 덴마크에 3개섬 구입에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미국 상원이 이를 부결시켰다. 그 배경에는 남북전쟁 후 생긴 국토 확장의 단점과 탄핵 재판 중인 앤드류 존슨 대통령의 지지를 표명한 것에 대한 상원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890년 미국과 덴마크의 협상이 재개됐지만 1898년부터 시작된 미국 전쟁에 의해 또 다시 협상은 중단된다. 1902년 미국 존 헤이 국무장관이 협상에 나서지만 이번에는 덴마크 의회가 거절한다. 덴마크 의회가 협상을 멈춘 건 섬 과반수를 차지하는 버진아일랜드 흑인이 흑인 차별이 뿌리 깊은 미국에 편입되어 버리는 걸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1915년 독일이 덴마크 자체를 합병하려는 우려가 생기면서 로버트 랜싱 국무장관은 만일 3개섬을 팔지 않으면 독일에 빼앗기기 전에 미국이 빼앗을 것이라는 협박성 협상을 했고 결국 3개섬에 대한 매매 계약이 성립된다. 1917년 1월 16일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조약에 서명하고 1917년 3월 31일 덴마크는 2,500만 달러에 미국에 세인트크로이섬과 세인트존섬, 세인트토머스섬을 판다. 이 합의가 이뤄지기까지 1865년부터 50년 이상이 지난 것이다.
이제 세인트크로이섬과 세인트존섬, 세인트토머스섬은 미국령 버진아일랜드(Virgin Islands of the United States)로 알려져 있다. 3개섬에는 모두 10만명 이상이 살고 있다.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제도는 미국 시민권이 주어지며 미국 본토에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다만 지금도 미국 버진아일랜드 거주자는 대통령이나 의회 의원 선거권이 인정되지 않아 투표에 참여할 수는 없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