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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민주주의가 말하는 의사 결정 방법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 대화는 회의 진행을 더디게 만든다. 하지만 꿀벌이 8자춤(Waggle dance)으로 진행하는 회의는 간단하고 효율적이라고 한다.

꿀벌은 늦은 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새로 태어난 여왕벌이 일벌을 거느리고 떠나는 순간 세력을 확대시킨다. 이 때 새로운 여왕벌을 따라가는 일벌은 원래 둥지에 있던 일벌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1만 마리에 달한다. 새로운 여왕벌을 거느린 무리는 비바람을 이기며 경험이 있는 일벌 300∼500마리를 사방으로 보내 새로운 둥지 후보지를 찾는다.

후보지를 발견하면 원래 무리로 돌아가 후보지 방향과 후보지까지 거리를 나타내는 춤을 추고 후보지 발견을 주장한다. 무리에서 기다리던 일벌은 춤 정보에 의존해 자신도 가서 후보지가 마음에 들면 다시 무리로 돌아와 춤을 춘다. 또 후보지 평가 기준은 둥지로 적절한 구멍 크기를 갖췄는지, 출입구 크기와 위치, 벽면 상태 등이라고 한다.

사방으로 흩어진 스카우트가 후보지를 각각 주장하기 때문에 결국 무리에선 여러 후보지 중 가장 훌륭한 후보지를 선정하는 경쟁이 펼쳐진다. 스카우트는 후보지 조사와 춤을 반복해 자신과 같은 후보지를 좋아하는 동료를 늘리는데 스카우트 1마리가 후보지와 무리를 왕복하는 횟수는 6회 정도라고 한다. 일부 스카우트는 다른 후보지를 주장하는 쪽 스카우트에 박치를 하거나 특수한 경고음을 내거나 춤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또 후보지를 조사한 스카우트는 반드시 다른 스카우트와 접촉해 조사 중인 동료 수를 파악한다. 보통 동료 20∼30마리가 같은 후보지에 몰려있는 경우 그 후보지가 대다수의 지지를 획득한 것이기 때문에 조사 중인 동료가 일정 수에 도달한 스카우트는 무리에게 선정 종료를 선언하는 날개 소리를 울린다. 이렇게 새로운 여왕벌은 동지를 짓는 곳을 결정한다.

이 과정을 보면 꿀벌의 위치 결정은 일단 다수결이지만 박치기가 계속 나오는 등 다소 거칠어 정말 좋은 후보지가 선정되는지에 대해선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여러 후보지 중 최적의 장소가 선정될 확률은 95%로 매우 정확하다고 한다. 말도 못하는 꿀벌이 춤만으로 뛰어난 후보지를 결정할 수 있는 건 간단하고 효율적인 의사 결정 과정과 관련이 있다.

먼저 후보지를 조사한 스카우트는 춤을 통해 자신의 후보지가 얼마나 뛰어난지 홍보한다. 사실 이 광고는 조금 춤이 뛰어나면 후보지를 표현할 확률은 80% 정도다. 하지만 뛰어난 후보지를 지지하는 스카우트는 열심히 춤을 춰서 꾸준히 지지자를 늘린다. 나름대로 후보지를 홍보하는 스카우트의 춤 횟수는 30회 정도지만 뛰어난 후보지를 알리는 스카우트는 90회 정도까지 춤을 춘다.

마지막 관건이 되는 건 가장 경험이 풍부한 상위 3∼5% 고참 꿀벌의 춤이다. 고참 꿀벌은 자신의 의견을 갖지 않고 선정 종반이 돼서야 자신의 근처에 있는 스카우트 춤을 복사한다. 고참 꿀벌은 임의의 스카우트 의견을 지지하지만 뛰어난 후보지를 지지하는 스카우트는 고빈도 춤을 추기 때문에 좋은 의견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꿀벌의 민주주의(Honeybee Democracy)라는 책에서 밝힌 꿀벌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해 경제학자 로빈 핸슨(Robin Hanson)은 개별 꿀벌은 자신의 의견을 결코 바꾸지 않지만 뛰어난 의견을 발신할 때 더 자주 의견을 표명한다면서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개별 꿀벌 의견이 집약되고 가장 뛰어난 후보지를 주장하는 의견만 마지막에 남아 선정 과정을 끝낸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꿀벌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도발 없이 다양한 의견이 마지막에는 하나가 된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또 꿀벌의 습성이 인간에게 얼마나 적용될지는 모르지만 이 간단하고 좋은 방법을 마음에 둘 가치는 충분하다는 말로 꿀벌이 합의를 형성하는 방법은 배울 만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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