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당뇨병 위험을 2배로 증가시킨다는 연구나 외로움이 흡연보다 사람을 더 빠르게 노화시킨다는 연구 등 외로움과 건강 위험 관계를 보여주는 연구는 끝없이 나열할 수 있다. 그래서 외로움 자체가 건강 위험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지만 유전자 데이터를 이용한 새로운 분석을 통해 외로움이 질병을 유발한다는 기존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결과가 나왔다.
광저우 의과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외로움과 질병 관계를 보여주는 연구는 많이 존재하지만 왜 외로움이 건강을 악화시키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은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관찰 연구에서는 외로움과 건강 문제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지만 외로움이 질병을 유발했다는 인과관계 유무까지는 대부분 밝혀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를 들어 질병에 걸려서 사회 참여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외로움에 빠지게 되는 경우와 같은 인과의 역전이나 외로움과는 별개 요인인 교란 요인이 외로움과 질병 모두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다.
외로움과 질병 연관성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연구팀은 영국에서 실시된 장기적인 대규모 조사인 UK 바이오뱅크에서 수집된 행동 데이터, 유전자 데이터, 입원 데이터를 결합한 분석을 실시했다. 데이터는 56종류 주요 질병을 망라하고 있으며 추적 기간 중앙값은 12년, 참가자 47만 6,100명 평균 연령은 56.5세,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연구자가 개발한 UCLA 외로움 척도로 외로움으로 판정된 사람은 전체 5%에 해당하는 2만 3,136명이었다.
연구팀이 먼저 입원 데이터와 사망 기록을 이용한 일반적인 분석을 실시한 결과 외로움은 56종류 질병 중 30종류 위험과 관련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외로움과의 연관성이 그 중에서도 강한 질병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 불안증, 조현병,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이었다.
더 나아가 연구팀은 유전자 데이터를 이용한 멘델 무작위화(MR) 분석을 실시했다. MR 분석은 유전자 변이가 무작위로 부모에서 자식에게 전해진다는 멘델의 법칙을 이용해 분석 결과 편향을 줄이는 방법이다. 특정 질병과의 연관성이 밝혀졌고 동시에 환경이나 생활 습관에 좌우되지 않는 유전자 변이에 주목해 인과의 역전이나 교란 요인의 영향을 줄일 수 있다.
연구팀이 외로움과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었던 30개 질병 중 유전자 데이터가 이용 가능했던 26개 질병에 대해 MR 분석을 실시한 결과 대부분 질병이 외로움과 인과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게 밝혀졌다. 잠재적인 인과관계가 보인 것은 26종류 질병 중 갑상선 기능 저하증, 천식, 우울증, 향정신성 약물 남용, 수면 무호흡증, 난청 6가지뿐이었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를 통해 외로움은 직접적인 질병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질병의 신호이므로 외로움에 대처하는 것만으로는 질병 위험을 줄일 수 없다는 게 시사됐다. 연구팀은 논문에 외로움은 대부분 질병 원인이 되는 위험 요인이 아니라 잠재적인 대리 지표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고 기록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