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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외딴 섬에 남은 인간의 흔적

아프리카 대륙에서 탄생한 인류는 오랫동안 유럽과 아시아에 진출하고 멀리 떨어진 대륙과 바다 건너 호주 대륙까지 서식 영역을 넓혀왔다. 이 중에는 환경이 열악해 인류가 정착하지 못한 곳도 존재한다. 알래스카에서도 가장 외딴 곳인 세인트매튜섬(St. Matthew Island)은 어떨까.

알래스카에 속하는 세인트매튜섬은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위치한 베링해에 있다. 섬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유인도는 264km나 떨어진 누니바크섬(Nunivak Island)이며 가장 가까운 거주지에서 배를 타고 24시간은 족히 걸린다. 이런 이유로 세인트매튜섬은 알래스카에서 가장 외딴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세인트매튜섬이 지금까지 전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건 아니다. 과거 몇 차례 사람이 방문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의 흔적은 섬 북서쪽 끝에 위치한 400년 전 수혈 주거(竪穴住居) 흔적이다. 이곳은 이누이트 조상인 툴레족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툴레인이 정착한 건 길지 않다.

베링해 원주민인 알류트족(Aleut)과 유피크족(Yupik)은 배가 바람에 휩쓸려 이상한 섬에 도착해 그곳에서 겨울을 나고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는 옛말이 전해진다. 세인트매튜섬에 주거를 만들었던 이들도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과연 이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는지 아니면 섬에 살던 북극곰에세 먹혔는지는 알 수 없다.

이후에도 몇 차례 세인트매튜섬을 방문한 사람은 있었지만 아무도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문자는 자신이 이 섬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1766년 세인트매튜섬을 방문한 러시아 해군 이반 신드(Ivan Synd) 중위는 수혈 주거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자신이 이 섬을 발견했다고 착각해 세인트매튜섬이라고 명명했다. 또 1788년에는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이 이 섬을 고어(Gore)라는 명칭으로 명명했고 이후 이 섬을 발견한 고래잡이들은 인근 섬에 맞춰 베어 제도(the Bear Islands)라고 하기도 했다.

일단 세인트매튜섬음 여름이 되면 수백 마리에 이르는 북극곰이 찾지만 2020년 기준으론 세인트매튜섬에는 북극곰이 서식하지 않는다. 1809년에서 1810년 사이 세인트매튜섬을 찾은 러시아인과 알류트족이 모피를 목적으로 북극곰을 사냥, 섬에 있던 북극곰을 쫓아버렸고 이후 괴혈병 등으로 거의 괴멸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북극곰이 없어진 뒤에도 세인트매튜섬은 안개나 악천후, 지리적 고립 등 문제로 인간에게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20세기 들어서도 때때로 난파선 승무원이 구조를 위해 머물 뿐 정착을 추진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다만 제2차세계대전을 계기로 세인트매튜섬에는 미국 해안경비대가 정착하기 시작했다. 해안경비대 목적은 태평양을 항해하는 함대를 지원하는 LORAN(long-range navigation) 시스템 기지국을 건설, 운용하는 것이었다.

세인트매튜섬 겨울은 가혹해 섬 남서부 해안에 설치된 LORAN 기지국에는 8m 깊이 적설이 쌓이고 허리케인 수준으로 강한 눈보라가 10일 몰아친다. 해빙은 1년 중 7개월간 섬을 에워싸고 있다. 겨울이 지나도 비바람이 부는 날이 많아 군인 5명이 탄 보트가 전복되는 사고도 발생하기도 했다.

1944년 공급이 중단되면서 식량 부족 우려로 해안 경비대는 순록 29마리를 반입했다. 전쟁이 끝나면서 1940년대 해안경비대는 섬을 떠났지만 천적이 없던 순록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1963년까지 6,000마리로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1963∼1964년 겨울이 매서워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했고 순록은 개체수가 격감해 1980년대 마지막 1마리가 죽었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사람의 흔적은 제2차세계대전 기간 중 건설된 LORAN 기지국 흔적이다. 이젠 절벽에 금속 케이블로 고정되어 있는 폴이나 대량 잔해 정도가 남아 있다. 또 대공황 이전으로 보이는 여우 사냥꾼 오두막이나 표류 선원이 구출되면서 섬에 남긴 잔해, 1950년대 섬을 방문한 과학자가 해변에 지은 오두막 등 다양한 사람의 흔적이 있다. 하지만 툰드라의 땅은 이런 유적을 삼키고 있으며 주위에는 고깔이나 이끼, 지의류가 잔해를 덮고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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