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억 4,500만 년에서 6,600만 년 전 지구는 백악기였다.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공룡이 있던 시대였던 것. 얼마 전 이 시대 포자와 뿌리가 발굴됐다. 그런데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 무려 백악기에는 남극점에서 1,000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 울창한 정글이었다고 한다.
예전에 지구 대기는 지금보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몇 배 높았고 백악기 지구는 온난기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구 온난화 시대 남극이 어땠는지 보여주는 과학적 기록은 전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최근 남극 지하를 파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것. 그 결과 남극점에서 불과 900km 가량 지점에서 9000만 년 전 꽃가루와 포자가 발견됐다. 이는 대단한 일이다. 현재 남극에서 1만km 넘는 곳에서 관측해도 연평균 기온은 영하 10도다. 식물이 살기 어려운 것. 하지만 발굴된 화석을 분석한 결과 당시에는 수십 종에 이르는 식물이 서식하고 있던 게 밝혀졌다.
연구팀은 특수 해저 시추 장비를 이용해 작업을 진행했는데 남극 서부에 있는 아문센 해협에서 이런 층까지 침투할 수 있었던 건 처음이라고 한다. 오래된 층에서 백악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걸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떤 걸 발견할지는 미지수인 상태에서 진행한 것이다.
연구팀은 2017년 연구용 쇄빙선을 타고 남극 서부 남위 73.54도에 있는 아문센해 골짜기로 향했다. 이 근처에는 오래된 퇴적물이 빙하 속에 굳어져 있어 좀처럼 내부로는 침투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해저 시추 장비(MARUM- MeBo70)를 이용한 것이다.
이 장비는 휴대용 원격 조작식 드릴링 장비로 80m까지 팔 수 있다. 하지만 드릴링을 방해하는 빙산이 있는지 위성 이미지와 장비를 탑재한 헬기에서 주위 지역을 확인하면서 작업은 난항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해저 30m 정도 판 곳에서 이번 포자와 뿌리를 발굴한 것이다.
드릴로 발굴한 퇴적물 샘플로 CT 촬영 등 분석을 한 결과 적어도 62종 식물 꽃가루와 포자 화석 뿌리가 확인됐다. 과학 잡지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이 중에는 현재 남반구에서 서식하는 침엽수와 고라리도 포함되어 있다. 이번 시추는 남극 서쪽 바다에 진행한 것이지만 지각 활동을 분석한 결과 일단 이 지각은 남극점에서 더 가까운 남위 82도에 존재하며 현재는 해저에 가라앉아 버린 지란디아 대륙의 일부였다고 한다. 또 발굴된 퇴적물과 화석은 9,000만 년 이전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이 연구를 통해 백악기에는 남극에서 900km 지점에 온대 우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온대 우림은 현재 뉴질랜드 일부와 미국 태평양 북서부에 있는 온난 다우 침엽수림처럼 온난하고 비가 많은 정글이었다. 연구팀은 이 같은 위도에서 놀라운 다양성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들 식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후 모델을 검증했다. 그러자 연평균 기온이 13도로 현재 시애틀과 비슷한 기후와 환경이 필요하다고 산정됐다. 예를 들어 남극 부근에선 이 온도를 4개월 유지하려면 지구 대기에 상당한 농도의 이산화탄소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아마도 당시에는 1,120ppm에서 1,680ppm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15ppm이다.
한 전문가는 이 논문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백악기 남극에 얼음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면서 만일 앞으로도 인간이 제한 없이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계속 내보내면 지구는 다시 같은 상황에 빠질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현재 예측 모델은 이대로 가면 2100년까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까지 증가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남극 얼음이 모두 녹고 지구는 수백만 년 동안 온실 상태가 될지 모른다는 경고가 나오기도 한다. 연구팀은 이렇게 남극 근처에 온대 우림이 있었다면 백악기 지구가 어떤 기후였을까에 대한 해명을 계속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